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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0년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킨다.”
1962년 존 F. 케네디는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미국이 밀리자 이렇게 선언했다. 그가 오늘날의 평범한 CEO였더라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사명은 팀 중심적 혁신과 전략적인 주도권 확립을 통해 항공우주 산업 분야에서 국제적인 리더가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선언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호소력이 있는가? 우리의 기업문화로 미루어 짐작하면 후자일 것만 같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실용적이고, 효율적이어서 한계에 봉착했는지도 모른다. 투입하면 바로 결과가 나와야 하고, 마른 수건을 더 짜는 걸로 위기를 돌파해왔다. 그래서인지 <아프니까 청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같은 책들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쩌나. 치유와 힐링은 잠깐 동안의 위로일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니.

그나마 인문학 열풍이 분 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필연적인 출구였는지도 모른다. 대학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말할 때, 인문학의 부흥을 가져온 건 엉뚱하게도 기업, 더 정확하게는 애플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였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있는 제품을 만든다”고 말했다. 애플의 아이폰에 깜짝 놀란 국내 기업들은 스티브 잡스의 경영방식에서 통찰과 혜안을 배우고자 했다. 기업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적으로 인문학 열풍이 불었다. 대학에 있는 인문학자들은 물론이고, 재야의 인문학자들까지 공중파에 나와 스타강사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럼 여기서 잠깐. 우리 기업이 진행하고 있는 독서경영은 과연 이런 인문학의 열풍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가? 이전보다 인문학, 고전, 역사, 예술 등에 대한 관심은 많아졌다. 그런데, 1회성 특강이거나 강연을 듣는 차원에 아직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인문학, 수동적 흡수에서 능동적 체화로

 

지금까지는 인문학이 무엇인지 체감하는 과정, 수동적으로 인문학을 받아들이는 데 급급했다면, 앞으로는 보다 능동적으로 인문학을 자신의 목소리로 재현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문제 해결력(problem solving ability)이 아니라 문제 제기력, 의제 설정력(agenda setting ability)이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벗어나 새로운 의제를 제기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은 딴지 걸기나, 비판적인 능력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능력이다. 노자철학을 전공한 최진석 교수는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통해 우리에게 문제의식이 없음을 통탄하고 있다. 그의 얘기를 잠깐 들어보자.

 

“왜 토론이 되지 않을까요?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할 말이 없을까요?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문제의식이 없을까요? 세계에 대하여 호기심이나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호기심이 없을까요? 욕망이 발동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욕망이 발동되지 않을까요? '자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계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독립적 주체로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배운 대로 움직이기만 하려고 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의성도 바로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질문도 없이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동선에 대한 질문이 없이 어떻게 그 동선이 나아가는 방향을 앞설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 주체적인 사고 없이 문제의식도 없고, 창의성도 없다. 애플이 아이폰이라는 기존의 시장에는 없던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탄생시키고, 애플스토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한 건 효율과 속도에서 벗어나 인간의 동선에 대한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인간이 감각적으로 요구하는 욕망과 본성을 제품 설계에 녹여낸 것처럼 필요(needs)가 아니라 요구(wants)를 미리 파악해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 기업에서 추진하고 있는 독서경영은 과연 이런 인간의 동선과 감성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몇몇 기업들은 오랫동안의 실천과 노력으로 나름대로 성과를 이루고 문화로 정착되고 있는 듯하지만, 새롭게 도입하거나 이전부터 도입했더라도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기업들이 많아 보인다.

 

 

 

눈앞의 성과효율에서 긴 안목의 학습조직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참여하는 직원들의 반응을 들어보면 대부분 부정적인 목소리가 많이 들려온다. “또다른 일”이거나, “회사에서 선정하는 순간 읽고 싶던 책도 읽기가 싫어진다”고 말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이들은 모두 부정적이거나 삐딱한 사고를 하는 문제사원일까?

 

영화로도 나온 도발적인 제목의 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이만교 작가의 얘기를 들어보자. 그는 독서는 자발성과 함께 시절인연이 맞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거기로 가는 길목에 바로 ‘씨앗 도서’가 있다고 말한다.

 

“독서에 있어서 문제는 독서능력이 아니라 방법이다. 내가 책읽기를 힘겨워하고 책 읽는 속도가 느린 이유는 나의 독서능력 때문이 아니라 책을 제대로 선정하지 못한 때문이다. 문제는 '씨앗 도서'를 고르는 방법이다. 씨앗 도서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이것만 찾아낼 수 있다면 독서는 주변에서 하지 말라고 말려도 하지 않을 수 없을, 한결 가슴 두근거리고 즐거운 '곳간 속 곶감 찾기'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독서는 즐거운 경험이기 보다는 억지로 하는 공부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그 독서에다 ‘경영’을 갖다 붙이니 ‘독서경영’을 즐겁게 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책과의 연애도 인연이 맞아야 한다. 각자 자기 상황과 자기가 하고 있는 고민에 맞는 책이 가장 좋은 책이다. 그런 점에서 책은 반드시 자기가 직접 골라야 한다.
 

사실 독서경영이 책을 제품 매뉴얼처럼 읽히게 하거나, 제대로 읽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테스트를 하거나, 강제적으로 독후감을 쓰게 하고, 그걸 인사고과에까지 반영하는 건 독서의 가치와 역할에 역행하는 일이다. 말을 물가로 이끌 수는 있어도 물을 억지로 먹일 수는 없듯이, 아무리 좋은 것도 하기 싫으면 소용이 없다.

 

 

근면-성실 패러다임에서 재미-창의 패러다임으로

 

누구나가 인정하듯이, 지속적인 활동으로 정착시키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재미’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은 재미있게 할 수 없다’는 선입견으로 대한다. 그러니, 일하는 건 고통일 수밖에 없다고 전제한다. 그렇다면 회사에 오는 것도 즐거운 일이 아니게 된다. 이런 논리라면, 일하면서 재미 있으면 그게 이상하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를 쓴 김정운 저자는 20세기 후반 역사상 유례없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능케 했던 원동력이었던 ‘근면 성실’이 21세기에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근면 성실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참고 인내하는 근면 성실은 아무 소용없다는 말이다. 사실, 참고 인내하는 방식으로는 누구도 창조적일 수 없다.

 

“사는 게 재미있으면, 일하는 게 재미있으면, 근면 성실하지 말라고 해도 근면 성실해진다. 순서를 바꾸자. 21세기에는 ‘지금’ 행복한 사람이 ‘나중에도’ 행복하다. 21세기의 핵심가치는 ‘재미’다. 창의적 지식은 재미있을 때만 생겨난다.”

 

여기에, 독서경영을 대입해 보자. 우리 기업은 말로는 창의성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창의성을 발휘할 기반이나 문화,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는 무관심하다. 아니, 역행하고 있다. 창조든 창의든 지식기반 사회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익숙한 것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낯설게 하기’다. 사물을 이미 정해진 맥락에서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놀이와 여행, 축제, 그리고 독서는 바로 이런 ‘낯설게 하기’의 대표적인 예다. 구글처럼 하겠다고 놀이터만 만들게 아니라 사람들이 자유롭게 상상할 정신적인 놀이터가 필요하다.

 

 

함께 읽기, 독서(讀書)에서 공서(共書)로

 

외과의사인데도 주식투자 전문가로 금융업계에서도 주목을 받았던 시골의사 박경철. 의사인데도 경제전문가로 활동이 가능했던 건, 분야를 넘나드는 엄청난 독서력 때문이었다. 그에게 독서는 “우연의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스티브 잡스에게 아이폰을 만들 기회가 주어진 건 이전에 그가 디자인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결과이고, 찰리 멍거가 위대한 투자자가 될 수 있었던 건 그가 그동안 쌓아온 인문, 사회, 철학에 대한 방대한 관심이 시대의 패러다임을 읽는 통찰적인 안목으로 발산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대우조선해양 중공업사관학교에서 2년째 하고 있는 독서토론도 바로 이런 “우연의 씨앗을 뿌리는 과정” 때문이다. 입시 중심의 학교교육에 매몰돼 정작 자신의 호기심을 발현할 기회가 없었던,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입사원들에게 다양한 독서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토론은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시간이다. 정답만 있는 것으로 배운 교육에서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황을 꿰뚫는 통찰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독서경영은 독서‘경영’이 아니라 ‘독서’경영이어야 한다. 또 하나의 경영기법이 아니라 문화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경영 관리의 도구가 아니라, 조직 소통의 마당이 되어야 한다. 독서(讀書)가 독서(獨書) 되면, 독서(毒書) 된다. 독서는 이제 함께 읽기, 즉 공서(共書)가 되어야 한다. 바로 그 지점에 독서토론이 있다.

함께 책을 읽으면 혼자 읽을 때보다 더 많은 질문과 대답을 경험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내 생각이 섞여 새로운 생각을 낳고, 또 타인의 생각을 듣고 이해하는 힘을 기르게 된다. 독서토론은 골방을 넘어 광장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공개와 공유, 협업의 시대, 함께 읽는 공독(共讀)이 답이다.

 

  

 

 

직장 내 모임보다 다른 업종 회사와의 모임으로

 

최근 구로에 있는 근로자복지센터에서 연령이나 직장이 모두 다른 10여명과 함께 독서토론을 진행했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 <고령화가족>, <프레임>, <몸과 인문학> 등을 주제도서로 해서 매주 진행했는데,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회사 내에서 할 때보다 더 재밌고 자유로운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회사 내 독서모임보다 인근에 있는 분야가 다른 회사 사람들과의 독서모임이 더 신선하고 재밌는 건 당연지사. 융합이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주로 경제경영 서적, 자기계발 서적만 읽던 한 참석자는 왜 답도 없고, 결론도 없는 인문학 서적, 특히 소설을 읽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다 과정을 마친 후 가장 좋았던 건 명쾌한 답이 아니라 모호한 그 느낌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그 모호함을 견디는 힘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간 수십 권의 자기계발 도서를 읽어도 읽을 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지나고 보면 변화의 추동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늘 제자리인 것 같았는데, 독서토론을 하면서 혼자서 하는 고민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쩌면, 없는 정답을 찾아 헤매다 보니 생긴 병통인지도 모른다. 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다양한 빛깔의 삶과 경험, 생각과 시선을 통해 겸손해지고 또 사고의 전환을 가져온다.

한가한 사람들이나 본다고 생각한 문학, 필요 없을 것 같은 역사와 철학, 예술 분야 책에서 예기치 않은 영감과 깨달음, 즉 세렌디피디(serendipity)를 발견한다. 창의성은 재미있게 놀다가 불현듯 찾아온다. 나태와 여유로움은 다른 개념이다. 바쁜 가운데에서도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자세. 그걸 습관화 할 수 있는 게 바로 삶이자, 공부가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현미경 아니라 망원경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각론보다 총론인지도 모른다. 실용지식, 당장 필요한 것만 하다 보니 제품과 서비스 그 너머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에 소홀했다. 각론에만 붙잡혀 있을 게 아니라 총론에 대해서 다시 고민해 봐야 한다. 현미경만 들여다 볼 게 아니라 망원경을 보는 여유와 시선, 안목이 필요한 때다.
 

눈 앞의 이익이 아니라 사람을 얻는 경영, 기업의 사회적 책임경영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때 되면 하는 의례적이고 보여주기의 봉사활동이 아니라 평소에 직원들과 고객들에 대한 관심,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공존과 공생의 가치가 경영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소통의 문화를 만드는 일이다. 창조경영은 그런 여유로움과 자유로움, 행복한 분위기에서 나오는 것이지 억지로 읽히고 강제적으로 추진하는 경영기법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독서경영은 지식경영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소통경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 직원들의 거부감을 피하고, 함께 꿈꾸는 회사, 함께 일하고 싶은 회사로 구성원들의 꿈과 비전을 모을 수 있다. 이제, 독서경영에도 역발상이 필요하다. 과제형에서 토론형으로, 또 지식형에서 소통형으로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서울보증 사보  2014년 1/2월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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