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책글말

읽기공동체와 독서운동

숭학당 2014.02.06 10:07

 

지난 9월 출판잡지 <기획회의>에 짧게 쓴 기고글 <각자도생 넘어 학습연대>에 대해 민음사 장은수 편집인의 코멘트를 뒤늦게 확인했습니다. 그 중에 참으로 동감하는 내용이 있어 공유합니다. 그리고, 저의 계획도 글 후반부에 잠깐 들려드리겠습니다.

"오늘날 읽기는 어느 때부터 풍성하면서 동시에 어느 때보다 허약하다. 위기에 빠진 것은 읽기 그 자체가 절대로 아니다. 사람들은 읽기를 멈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량 읽기의 지옥에 빠져 있으며, 실제로 외면하는 것은 오로지 책 읽기뿐이다. 거대 네트워크에서 끊임없이 공급하는 읽기 다발들에 질식해서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것이고, 그 탓에 책은 DMB나 카톡이나 게임 등에 밀려 사람들의 시간을 점유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 엄중한 사실에서 출발하지 않고, 관료적 의무, 도덕적 열정, 상업적 기획에서 시작된 모든 독서 운동은 아마도 실패할 것이다. 요컨대 사람들은 이제 읽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은 읽을 수 없는 것이다. ...

따라서 우리는 책 읽기에 읽기 그 자체 이상의, 더 커다란 기쁨을 돌려 주어야 한다. 물론 책 읽기는 내면의 영혼을 직접 파고든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문화 행위를 압도하는 경험을 제공하지만 그 경험으로 이끄는 통로를 개인이 확보하는 것에는 어쩌면 보통 교육을 비교적 충실히 이행해야 하는 상당한 훈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 고된 훈련 과정이 오히려 기쁨이 되는 세계의 구축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힘써 이룩해야 하는 협동의 과제일 터이다. 이것은 아마도 전체로서는 이룩할 수 없고, 스승과 선후배와 친구와 가족이 하나로 연결되는 지역적 공동체 속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관료적 의무, 도덕적 열정, 상업적 기획에서 시작된 모든 독서 운동은 아마도 실패할 것이다."고 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독서운동의 계몽성이 평소에 불만이었습니다. 숭례문학당의 입장에서는 '상업적 기획'을 가장 경계하고 있지만, 독서와 자본의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이나 어설픈 타협 아닌 현실적인 대안을 담은 공존을 모색 중입니다.

그것이 인문학과 자기계발의 행복한 만남, 재미와 가치의 두마리 토끼잡기입니다. 일부 인문학 독서광들의 독선도, 자기계발광들의 이기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을 만드는 인문학과 실천을 만드는 자기계발서의 절묘한 조화, 사회과학의 이성과 문학의 감성을 아우르는 균형적인 독서를 독서공동체에서 감히 구현해 보고자 합니다.

조만간 아주 평범했던 사람들이 독서공동체를 만나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담은 도반들의 독서여정을 연재합니다.

 

 

 

 

 

 

文과 字의 집 ㅡ 읽기 공동체와 가독성에 대하여

 

 

도저히 글을 쓸 만한 틈을 낼 수가 없어 블로그에 소홀해졌다. 잠깐 숨을 돌려 그동안 읽었던 책들을 메모해 두려고 한다.《기획회의》야 늘 오자마자 그 자리에 읽어 치우는 편이지만, 352호에 실린 글들을 읽다가 밑줄 그어 둔 구절들을 정리할 마음을 품은 것은 평소에 고민해 왔던 ‘읽기 공동체’와 ‘가독성’ 문제를 다룬 글들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신기수의 여는 글 「각자도생을 넘어 학습 연대로」는 흥미로운 글이다. 평소에 출판의 뿌리는 읽기 공동체에 있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 20대 청년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진행 중인 읽기 공동체의 해체를 막아 내지 않고는 출판은 후속 세대를 확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장차 그 인간적 기반마저 상실하고 말 것이다. 더 나아가서 책이 그 안에 품고 있는 인간적 삶에 대한 성찰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최초의 통로마저 서서히 막혀 버릴 것이다.
 
내 생각에 이 사태는 현재 한국 출판의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홍세화가 “우리 시대 진보에게 필요한 건 ‘투쟁’이 아니라 ‘공부’라며 학습협동조합 ‘가장자리’의 설립을 주도”했다는 소식은 상당히 예리한 현실 인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디 잘되기를 바란다.
 
“이제 골방의 독서에서 광장의 독서로 자세와 환경을 바꿔야 한다.”라는 신기수의 제안은 읽기의 위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대안이다. 그러나 필자 본인도 곧바로 경계하듯이, 광장이라는 수사가 흔히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꾸며 내는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거대 네트워크야말로 책의 적이다.
 
오늘날 읽기는 어느 때부터 풍성하면서 동시에 어느 때보다 허약하다. 위기에 빠진 것은 읽기 그 자체가 절대로 아니다. 사람들은 읽기를 멈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량 읽기의 지옥에 빠져 있으며, 실제로 외면하는 것은 오로지 책 읽기뿐이다. 거대 네트워크에서 끊임없이 공급하는 읽기 다발들에 질식해서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것이고, 그 탓에 책은 DMB나 카톡이나 게임 등에 밀려 사람들의 시간을 점유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 엄중한 사실에서 출발하지 않고, 관료적 의무, 도덕적 열정, 상업적 기획에서 시작된 모든 독서 운동은 아마도 실패할 것이다. 요컨대 사람들은 이제 읽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은 읽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책 읽기에 읽기 그 자체 이상의, 더 커다란 기쁨을 돌려 주어야 한다. 물론 책 읽기는 내면의 영혼을 직접 파고든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문화 행위를 압도하는 경험을 제공하지만 그 경험으로 이끄는 통로를 개인이 확보하는 것에는 어쩌면 보통 교육을 비교적 충실히 이행해야 하는 상당한 훈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 고된 훈련 과정이 오히려 기쁨이 되는 세계의 구축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힘써 이룩해야 하는 협동의 과제일 터이다. 이것은 아마도 전체로서는 이룩할 수 없고, 스승과 선후배와 친구와 가족이 하나로 연결되는 지역적 공동체 속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노동이 기쁨이 되는 이 불가능한 과제를 실제로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네트워크화한 삶이 거세해 버린 지역적 삶과 결합하지 않는 한 책 읽기는 지속적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출판사와 서점이 지금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아마도 지역성과 결합해 그곳에서 읽기 공동체를 구축하는 일일 터이다. 내 생각에는 그렇다. (이하 생략)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