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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피운 남친을 업어주겠다는 여자, 어머니에게 종아리를 맞는 중년의 사내, 매일 웃으면서 우울증에 걸렸다고 약을 먹는 남자, 선물 준 여친에게 “왜 쓸데없는 짓을 하냐!”며 나무라는 청년.

홍상수 감독의 신작 <하하하>의 별난 주인공들이다. 감독은 이들의 연애를 귀엽게 지켜본다. “나름 이유가 있어 그런 것 아니겠느냐”며 여유를 부린다. 관객이 시종일관 “하하하” 웃어대는 이유다. “좋은 것만 보도록 노력하라”는 대사처럼, 보는 이에겐 ‘귀여운 연애’만 보인다. 그러나, 뒤편의 고민은 묵직하다. 주인공들은 ‘이상한 끈’으로 연결 돼 있으며, 해결되는 문제는 하나도 없다. 늘어가는 새치와 달리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 사내들의 이야기.

고향인 통영에 머무는 문경(김상경)은 캐나다 이민을 앞두고 어머니(윤여정)의 집에 머문다. 데뷔하지 못한 영화감독 지망생이다. 그의 선배 중식(유준상)은 또 다른 주인공. 영화평론가인 중식은 문경과 비슷한 시기에 통영에서 휴가를 보낸다. 문경이 관광가이드 성옥(문소리)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이, 중식은 내연녀 연주(예지원)와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 이때 성옥의 연모남이자 중식의 후배인 시인 정호(김강우)가 등장하며 커플들의 관계는 복잡해진다.

영화는 문경과 중식의 대화 장면을 흑백사진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두 사람이 보낸 ‘같은 시간’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이 ‘같은 지점’을 도는 마라토너인데도 이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다. 성옥에게 빠져 있는 문경이나 연주와의 관계로 고민하는 중식 모두 같은 공간에 있었으나 ‘서로의 시간’을 알지 못한다. 코앞에 놓인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타인의 시간’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때문에, 육십이 넘은 어머니에게 문경이 종아리를 맞는 장면이나 큰아버지 앞에서 떼를 쓰는 중식의 몸부림은 수긍 할만하다. 아직 자라지 못한 이들의 버팀목은 바로 ‘부모’다. 이는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그리지 않던 홍 감독의 새로운 시선으로 보인다.

두 사람을 보살피는 또 다른 존재는 여자다. 문경이 쫓아다니는 성옥, 중식의 애인 연주, 그리고 문경의 어머니 모두 남자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전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생활의 발견> <극장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해변의 여인>과 마찬가지로 남자는 여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남자는 여자 때문에 자라지 못한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안달하는 이유다.

<하하하>의 다른 점이 있다면 정호라는 새로운 남성상이다. 그는 꽃을 선물한 성옥에게 “왜 자꾸 뭘 하려고 그래!”라며 호통을 친다. 그러면서, 자신을 따라다니는 정화(김규리)와 호텔에 드나든다. 두 여자에게 애정공세를 받는 정호는 문경, 중식과 달리 연애에 연연하지 않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지금까지 보여준 홍 감독의 ‘가장 신선한’ 남성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 정호 역시 여자가 제공한 공간에 안착한다. 문경의 어머니가 빌려준 아파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 이때, 헤어진 성옥이 아파트로 오겠다며 전화를 걸어오고 정화는 장 본 꾸러미를 들고 정호의 아파트로 향한다. 문경모, 성옥, 정화 세 여자가 ‘기이한 방식’으로 얽힌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정호와 정화는 섹스를 한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정호가 여자들로부터 받는 환대는 홍 감독의 역설적 뉘앙스다. 미성숙한 남자를 돌봐야 하는 여자 역시, 줄 것 없는 남자에게 끌리는 ‘덜 현명한’ 존재라는 해석으로 보인다. 결론적로 말하자면, 연애에 빠진 남자와 여자는 성숙할 수 없는 숙명의 주인공이다.

<하하하>는 감독의 여러 전진(前進)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강원도의 힘> <오수정> <생활의 발견> 등에서 거론된 ‘시간’의 문제를 사진과 대화로 구체화 한 점이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한다. (영화 <오! 수정> 역시 같은 시간을 보낸 두 남녀가 다른 기억을 가진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또한, 전에 다루지 않던 가족 관계를 등장시킨 점 역시 흥미롭다. 12명의 스텝으로 실험을 거듭한 감독의 도전, 노개런티에도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의 호흡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홍상수의 다음 공간 그리고 시간이 궁금해진다.

- 김민영 bookworm@r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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