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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는 이는 많다. 그러나, 실천하는 사람은 적다. 장애물을 만나고, 한계를 느낄 때 마다 꿈은 작아진다. 그러다 소멸된다. 어떤 꿈을 꾸었는지 망각하고, 현실에 안착한다. 이것이 어른들의 삶이고, 현실이다. 



그러나, 영화감독 팀버튼의 생각은 다르다. 어른일수록 꿈을 꿔야 하고, 상상해야 한다. 이게 그의 지론이다. 그의 상상력을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 한다. <비틀쥬스> <가위손> <배트맨> <빅피쉬> <유령신부>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을 통해 보여준 상상의 세계는 놀라웠다. 고전과 판타지, 문학과 영상을 오가는 그의 솜씨는 날렵했다. 최신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팀버튼 상상력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루이스 캐롤의 고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 in Wonderland)> 그리고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의 줄거리가 이 영화의 뼈대다. 주된 이야기는 19살의 앨리스(미아 와시코우스카 분)가 다시, 이상한 나라로 돌아간다는 내용으로 독재자 붉은 여왕(헬레나 본햄 카터 분)과 그의 여동생 하얀 여왕(앤 해서웨이 분), 모자장수(조니 뎁 분)가 등장해 재미를 더한다.  

  

 

팀버튼 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는 가장 중요한 코드는 ‘상상’이다. 런던에 살고 있는 앨리스는 귀족남성에게 청혼을 받던 날, 이상한 나라로 이동하게 된다. 평소 상상하기를 즐기던 그녀에게 남들과 같은 결혼생활은 지루하고 따분한 일이었을 뿐.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것은 못 된다.

이러한 앨리스의 성향은 아버지로부터 나온 것인데, 그녀의 아버지는 평소 “매일 6가지씩 상상하기”를 즐긴다. 이런 호기심은 딸 앨리스에게 고스란히 전수된다. 

 



함께 읽어 할 코드는 ‘편견’이다. 이는 ‘붉은 여왕’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잘 표현된다. 평소 ‘왕대가리’로 불리는 붉은 여왕은 체구에 비해 유난히 큰 머리를 갖고 있는데, 성격까지 난폭해 미움의 대상이 된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목을 베고, 발이 피곤하다고 돼지 배에 발을 올려놓는 등 모든 게 제멋대로다. 사람들은 붉은 여왕의 폭정이 두려워 비위를 맞추나, 속으로는 경멸한다.

여왕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그들 자신도 흉측한 코, 가슴, 배를 붙이길 자처한다. 이들의 외모가 실제가 아닌 퍼포먼스였다는 사실이 폭로되자 붉은 여왕은 광분한다. 영화는 왕따가 된 붉은 여왕이라는 인물을 통해, 사회의 편견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여왕이 직시해야 할 현실은 누구나 넘어야 할 현실의 경계다. 
 



이러한 팀 버튼의 생각이 잘 전달되는 것은 ‘붉은 여왕’ 역을 맡은 헬레나 본햄 카터의 명연기 때문이다. 팀버튼의 아내로도 잘 알려진 그녀는 감독의 페르소나로 다수의 영화에 출연해왔다. <빅피쉬> <유령신부> <찰리와 초콜릿 공장> <스위니 토드>에서 팔색조 연기를 펼쳐 왔다. 그 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녀의 필모그라피 중 돋보이는 작품으로 보인다.
 

히스테리와 괴벽, 귀여움을 동시에 갖춘 ‘붉은 여왕’이라는 역할은 한마디로 복합적인 인물. 신경증에 사로잡혀 있다가도 좋아하는 남자 앞에선 다소곳해지는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다. 이를 헬레나 본 햄 카터는 거의 완벽하게 소화한다. 극도의 클로즈업으로 부각되는 얼굴, 과하게 벌어진 눈과 눈썹, 귀엽게 말려진 속눈썹, 황정음의 틴트를 연상케 하는 작은 입술이 매력을 배가시킨다.


주변인물로는 뚱보 형제, 개 베이야드, 지렁이 압솔렘, 붉은여왕이 사랑하는 잭스테인 등이 있다. 이 중 베이야드는 크기가 작아진 앨리스를 태우고 다니며 훌륭한 교통수단 역할을 한다. 후일, 붉은 여왕에게 잡혀있던 가족을 만나는데 성공한다. 이 밖에 증발기술의 달인 고양이 ‘체셔’가 나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 밖에 ‘미친 모자장수’로 조니 뎁의 연기도 일품이다. 특히, 마지막에 추는 ‘엉뚱한 댄스’는 배꼽을 쥐게 만든다. 그가 열연한 모자장수는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를 통과하게끔 도와주는 수호천사 같은 역할이다. 전편보다 덜 기괴하고, 더 친절해진 사랑스러운 조니뎁을 만날 수 있다.

 함께, 주인공 역을 맡은 미아 와시코우스카의 연기도 기대 이상이다. 눈처럼 흰 피부, 가녀린 몸매, 매끄러운 금발을 가진 그녀는 19세 앨리스 역할에 딱 맞아 떨어진다. 특유의 영국식 발음이 매력적이며, 불의의 상황에 직면하는 차분함과 혼란을 잘 묘사해냈다. 조금 아쉬운 것은 앤 헤서웨이. 로맨틱 코미디류에 잘 맞는 그녀의 러블리 페이스는 역할엔 어울리나, 연기는 부족하다. 각종 캐릭터가 비빔밥처럼 잘 어우러지는 가운데, 하얀 여왕의 과도한 제스추어는 물에 뜬 기름처럼 구별된다.  


 


영화는 앨리스의 새로운 출발로 막을 내린다. 천신만고 끝에 현실로 돌아온 앨리스는 결혼 대신 취업을 택한다. “Wonder”라는 이름이 새겨진 배를 타고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그녀의 당찬 모습은 고전 속 앨리스의 새로운 해석이다.

3D 판타지 모험물로 재탄생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상상과 편견이라는 흥미로운 키워드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꿈을 잃어버린 어른들에게 “매일 상상하라!”고 외치는 이 영화의 충고는 창의력을 요구받는 현대인들에게 유의하게 다가온다.

“자신을 ‘행복하고 운이 좋은 미친 우울증 환자’라고 말하는 팀 버튼은 진정한 몽상가다. 보통 우리 문화에서 찬밥 취급을 받는 만화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사람에게 ‘몽상가’라는 호칭을 붙여주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어쨌든 버튼은 현재 우리의 문화를 축복하면서 동시에 그 면전에 대고 침을 뱉는다. 그 점이 바로 그의 작품이 가지는 낯설지만 멋진 매력이다. 그는 화가 나 침을 뱉지만 그 침은 달콤하다.” - <팀 버튼: 고딕의 영상시인> 중, 인터뷰어 브레스킨 

 김민영 (bookworm@r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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