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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 하는 유전자'를 물려 받은 도넛. (이리 교만할 데가^^) 처음엔, 말이 자주 막히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를 못했습니다. "저렇게 쉬운 이야기를 왜 못하지?" "자기소개 할 때 왜 저렇게 떨지?" 정말, 처음엔 이해하기 힘들었죠. 그런데, 강의를 하면서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 서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 짧은 자기소개에서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사람, 무얼 보든 읽든 물어보면 한마디 "괜찮았어"로 끝나버리는 사례를 접하다 보니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이렇게 공감하게 된 겁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계기는 대학원 수업시간에 만났습니다. 한 교수님의 일화였어요. 이야기에 따르면, 모 방송국 토론프로그램에 나간 k교수님. 평소 스피치가 원활치 못한데다 긴장까지 하시는 분이라 필사적으로 출연을 고사했으나, 작가들의 끈질긴 요청에 못이겨 출연을 결심. 전쟁을 치르는 심정으로 방송을 준비하셨답니다. 준비기간이 꽤 길었던지라 자료를 찾을 시간은 넉넉했다네요. 덕분에, 연구실엔 방송과 관련한 자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였죠.

드디어, 방송당일. "적어도 망신을 당하진 말아야 해!" 각오로 스튜디오에 들어선 k교수님.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눈부신 조명이 쏟아지자 그 때부터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000토론!"이라는 멘트가 나오자 다리까지 떨렸답니다. "이러면 안되지. 침착해야지..... 침착 또 침착..." 몇 번이나 다짐했건만 교수님의 머리는 순식간에 눈밭으로 변했고, 상대방의 공격에도 "어....어...그러니까..."라는 말만 뱅뱅 돌더란 말입니다. 셔츠는 땀에 젖고, 손은 수전증으로 떨리고. 결국, 제대로 된 토론도 해보지 못한 채 방송은 끝나버렸습니다. 이후, 방송 요청이라면 절대, never! 응하지 않는다는 교수님의 에피소드를 듣고 학생들은 웃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죠. "전문가에게도 말하기란 공포일 수 있구나..."

사실, 토론은 단순한 스피치를 넘어선 말하기의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아무리 말을 잘 하는 사람도, 토론에서 빛을 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상대가 치고 들어오지 못하게 탄탄한 논리를 펼쳐야 하는 것은 물론, 감정적으로 빠져서도 안되니까요. 아킬레스건을 찔리더라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자기 논리를 펼칠 수 있다면 대단한 토론가겠죠. 하지만, 반대로 보는 사람 입장에선 다소 얼굴도 붉히고 목소리도 높이는 토론현장이 재미있는 법입니다. 이런 토론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오랜시간 회자되는 화제의 토론으로 남기도 합니다.



▲ 토론의 달인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지식소매상 유시민 전 장관


그런 점에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와 지식소매상이라 불리는 유시민 전 장관은 토론의 달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근거와 사례를 통해 자기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펼치는 것은 물론, 반하는 주장을 꺼내는 상대를 논리로 제압하는 배짱도 대단한 분들입니다. 얼마전, 100분 토론에 나온 두 분의 스피치를 보고 다시 한번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반대로, 논객이라 부르는 진중권씨의 토론실력은 뛰어나 보이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소견입니다만, 수시로 감정적으로 돌변하는 데다 자기논리를 합리화 시켜 상대를 궁지로 모는데 힘을 쏟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건전한 토론이라기 보단 말싸움을 하는 것으로 종종 비춰지곤 합니다. 늘 그렇다고 볼 순 없지만, 적어도 제가 본 몇번의 토론에선 그런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특히, 글을 쓰기도 했던 '디워' 100분 토론에서 진중권씨가 보여준 행동에서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당시 지면에선 반대되는 이야기를 쓰셨는데, 오늘 토론에서 하시는 말씀과는 배치되는 듯합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라고 당차게 파고드는 여대생 앞에서 그는 "꼭지가 돌아버려서!"라며 격분하고 말았지요. 자기감정을 너무 쉽게 노출해버린겁니다.

덕분에, 주도권을 잡게 된 여학생은 더욱 논리적으로 그를 추궁했고 분위기는 토론이 아닌 말싸움 현장으로 돌변했습니다. 다시보기를 통해 몇번이나 이 장면을 다시 본 도넛은 강의 중에도 이 사례를 소개하곤 합니다. 여대생이 들고 나온 게 글쓰기에 있어 필요한 논거라면, 진중권씨의 격분은 주의해야 할 감정과잉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아무튼, 토론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매끄럽게 말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컨텐츠'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다시, 독서와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밖에 없구요.



▲ <말통자> 수업을 이끌고 있는 김우진 아나운서


오늘 시작한 <말통자> 프로그램 역시, 컨텐츠에 주목한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 하다 '턱턱' 걸리는 부분이 있거나, 너무 긴장한 나머지 호흡이 가빠져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 기본적인 문제라면, 다음은 "What?" 무엇을 말할 것인가의 문제에 봉착합니다. 가끔, 자기소개를 하거나 독서토론을 할 때 하나마나한 이야기로 시간을 끄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말은 매끄럽지만, 메모를 해보면 쓸 말한 내용이 별로 없는 핵심이 없는 말이죠. 이런 말은 들을 때는 그럴 듯해 보여도 그 사람의 주장이나 배경지식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주변적인 이야기나 개인적인 느낌이나 생각을 얘기한다는 것이죠. 바꿔 말하면 이런 말들은 스피치라기 보다는 수다에 가깝습니다.

말하기도 글쓰기처럼 서론-본론-결론의 형식을 갖춘 구조짜기가 필요합니다. 즉흥적인 말로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나운서처럼 미리 준비된 짜여진 원고까지는 아니더라도 토론이나 스피치에서는 나름대로 정리된 내용을 중심으로 임기응변과 순발력을 발휘해 애드립을 쳐야겠죠.

예를들어 이런 겁니다. "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원래 이런 장르의 책을 좋아하는 데 아주 재미있었어요. 책장이 빨리 넘어가서 금새 읽었습니다. 다른 분들에게도 재미있다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길게 늘어뜨리긴 했지만, 결국 압축해보면 "재미있었다"는 겁니다. 듣는 사람으로서는 지루할 수 밖에 없죠. 이걸 재미있게 만들려면, 컨텐츠 있게 만들고 싶다면 "재미있었다"는 말을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 즉 어떤 부분인지 어떻게 왜 재미있었는지를 덧붙여야 합니다. 그래야 "아하, 그 부분은 나도 재미있었는데"라거나 "나는 그냥 넘어갔는데, 그 부분을 다시 봐야겠구나", "나는 별로였는데, 나하고는 다르네" 이런 다양한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공감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다양한 반응들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말은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수단입니다. 짧은 말로도 더 임팩트 있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캐릭터가 신선했다." 라거나 "문체가 독특했다" 등의 추가적인 설명이 들어가면 더 좋겠죠. 그러면, 보다 구체적으로 책에 대해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3분을 넘어 5분 7분이 되도, 같은 이야기로 제자리를 멤도는 사람. 독서토론 할 때 의외로 많더라구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메모"입니다.




▲ <말통자> 수업 현장, 컨텐츠가 살아있는 자기소개 연습


오늘 수업을 진행한 김우진 아나운서 역시 그런 말을 했어요. "말을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배경지식이 없어서이고, 생각의 방에 이야기거리를 넣지 못해서이다" 조금 자세히 풀면, 배경지식이란 이야기거리를 말하구요. 생각의 방이란 소재의 위치입니다. 즉, 강의를 앞두고 혹은 모임을 앞두고 어떤 이야기를 언제 할 것인가를 준비하라는 거죠. 이때 필요한 게 바로 메모라고 김우진 아나운서 역시 말했습니다. 메모를 습관화 하면, 배경지식이 쌓일 뿐 아니라 이야기거리가 풍성해져 어느 때건 컨텐츠가 살아있는 말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상당히 공감가는 강의였습니다. 뒤에 앉아 있던 도넛도 좋은 내용이 많아 노트북에 받아적으며 메모했답니다.

오늘 수업에선 수강생들이 스피치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기도 했습니다. 6주간의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마다 자신이 어떻게 말하는지 볼 수 있도록 영상으로 만들어 이메일로 보내줍니다. 처음엔 말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게 부끄럽겠지만, 익숙해지면 스스로 모니터링하게 되겠죠. 마치, 연예인들처럼 말이에요.

저 역시 기자생활을 거치지 않았다면 말이 부족했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비결은 녹취에 있었는데요, 끊임없이 인터뷰를 하다보니, 그 내용을 녹취하고 풀어내는 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한 말을 듣는다는 거, 처음엔 어찌나 고통스러웠는지요. 적응도 안 될 뿐더러, 듣기 싫었습니다. 여러분도 녹음한 내용을 한번 들어보세요. 다른 사람 말은 괜찮은데, 자신이 말하는 부분은 오류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어쨌든, 일이니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데, 이 일을 자꾸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좋지 않은 말하기 습관도 고치게 되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연습도 하게 되었습니다. <책통자> 수업에서 인터뷰 글쓰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터뷰는 타인의 생각을 듣는 경청, 글쓰기, 말하기 세가지를 연습할 수 있는 정말 좋은 툴입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글이 길어졌네요. 스피치는 관련한 책들을 구해서 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죠.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겠지만,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독서의 효과는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한 발 나아가 독서토론에 참여하는 것 만큼 좋은 수업이 없겠죠. 혼자읽기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독서토론에 참여해보시기 바랍니다.


댓글
  • 프로필사진 구름 안녕하세요 도넛님 블로그에 가끔 들리는 블로거 입니다.
    어쩌다 보니...이곳에도 들리게 되었네요..

    도넛"이라는 단어를 보고서야...아,,블로그에서 말하던 거기가 여기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읽었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스피치 관련해서 추천책이 있으면 알려주시면 감사드릴께요
    저도 스피치에 관해 관심이 많고 말을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중 한명인데
    배경지식의 부족"이란 말에 백배천배 공감하고 있습니다.

    스피치 책 추천 부탁드려도 될까요?
    2010.02.23 12:46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maehok.tistory.com BlogIcon 숭학당 스피치 관련 도서를 한두 권 보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거의가 비슷비슷합니다만, <3분 스피치>, <브라이언 트레이시처럼 말하라>, <유정아의 스피치 강의> 등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각각 일본/미국/한국인이 쓴 책이네요.

    배경지식은 독서를, 토론이나 협상력, 스피치 능력은 독서모임을 통해 기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2010.02.24 17:57 신고
  • 프로필사진 구름 추천 감사합니다. 제대로 읽어보고 배경지식도 열심히 쌓아야 겠습니다~^^ 2010.03.03 22:37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bhofsam.tistory.com BlogIcon samaleph 잘 읽었습니다.
    역시 어떠한 능력을 얻으려면 그만한 노력이 필요한 법이네요. :)
    2010.08.04 14:0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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