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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소설은 정의감을 보이지 않는다. 등장인물은 현실에 저항하려 하지 않고, 전복(顚覆)적인 발언을 꺼내지
않는다. 그저, 적절히 현실과 타협한다. 그들이 먹고 사는 방법이다. 경제적인 문제로 고통 받지 않기 위해서, 김훈은 이상이 아닌 현실을 택한다. 신작
「공무도하」(문학동네) 역시, 현실을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공무도하’란 옛 고조선 나루터에서 벌어진 익사사건을 말한다. 걸어서 강을 건너려다 물에 빠진 이는 봉두난발의 백수광부였다. 나루터 사공의 아내는 백수광부의 죽음을 슬피 울며 노래했다. 김훈은 “나의 글은 강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라고 설명한다.

작가의 말처럼, 소설은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들을 그려낸다. 그들에게 강을 건너고 싶은 욕망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김훈은 거기까지 쓰지 않는다. 다만, 건너지 못해 괴로운 현실을 조망할 뿐이다. 전작 「남한산성」과 비슷한 형국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임금 인조와 신하들의 이야기를 현대극으로 재편한 듯 보인다.

소설의 배경은 경남 창야와 해망이다. 모두 작가가 만들어낸 공간이다. 책에 따르면, 창야는 경주인접 지역이며 해망은 서해 어촌쯤 된다. 이야기는 창야에서 터진 저수지 붕괴사고로 시작된다. 일간지 기자 문정수는 이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다. 붕괴사고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은 문정수의 애인 노목희의 것이다. 자신의 고향인 창야에서 일어난 사고를 지켜보며, 그녀는 고향선배 장철수를 떠올린다. 창야를 떠나 해망에 머무는 장철수는 후일, 문정수가 쫓는 소방위 박옥출과 연루된다. 한편, 사건취재로 창야와 해망을 오가던 문정수는 기사로 쓸 수 없는 두 사건과 마주하며 괴로움을 겪는데...

「공무도하」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이 따로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중심엔 문정수가 있으나, 그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토리는 아니다. 등장인물은 모두 개별적으로 존재하며, 사건 역시 병렬식으로 펼쳐진다. 소설은 하나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보다는 여러 인물과 지역에 관심을 둔다. 따라서, 소설의 배경지인 창야와 해망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창야와 해망, 침묵하는 자들이 머무는 곳

문정수가 마주하는 첫 번 째 사건은 해망에서 벌어진다. 혼자 지내던 초등학생이 개에 물려 죽은 사건이 터지자, 차장은 문정수에게 해망에 다녀올 것을 요구한다. 해망은 죽은 아이의 엄마, 오금자의 소재지다. 현장에 도착한지 얼마 안 돼, 문정수는 오금자의 거주지를 알게 된다. 그러나, 찾아 나서지 못한다. “제 자식이 개에 물려 죽었다는 뉴스를 보고 정신을 잃더라”는 동네주민의 말 때문이다. 그는 취재를 포기하며 생각한다.

“냅두자, 더 이상 건드리지 말자, 오금자를 자식과 개에게 옭아매지 말자”

이어 문정수는 소방위 박옥출에 대한 기사도 쓰지 못한다. 캐피탈백화점에서 대형 화재가 일어나고, 불을 끄러 갔던 소방위 박옥출은 귀금속을 훔쳐 달아난다. 그가 도착한 곳 역시, 해망이다. 브로커에게 귀금속을 넘기고 5천 만 원을 받은 박옥출은 그 돈으로 신장을 이식받는다. 신장염을 앓고 있던 그는 이식에 성공 한 후, 해망에서 고철사업을 한다. 박옥출과 알고 지내던 문정수는 이 모든 일을 알면서도 기사로 쓰지 못한다. 박옥출은 문정수에게 말한다.

“야, 장기매매 같은 건 기사 쓰지마. 내가 다 갚을게. 넌 쓴 기사보다 안 쓴 기사가 더 좋다. 그게 더 진실 돼. 안 그래?”

이렇듯, 수동적인 문정수의 태도를 차장은 다그친다.

“넌 냄새는 잘 맡는데, 무는 힘이 약해, 사건기자는 개처럼 꽉 물어야 하는데 말야.”

상사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문정수는 태도를 바꾸지 못한다. 김훈은 이를 정의감이나 양심으로 추앙하지 않는다. 그저, 누구나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비루하고, 던적스러운 인간의 삶이라고 덧붙인다. 이는, 노목희의 고향선배 장철수의 입을 통해 되풀이된다.

장철수는 농과대를 졸업하고 농촌지도서에서 일하던 중, 노학연대 사건에 연루되어 수배명령을 받는다. 악덕기업의 만행에 죽음으로 항거한 노동자를 추도하며 장철수는 말한다.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

수배 중이던 장철수는 경찰에 검거되었다 풀려난다. 수배자들에 대한 정보를 털어 놓은 대가였다. 이후, 창야 사람들은 장철수에게 ‘배신자’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추도사에서 이미, 배신의 조짐을 만인 앞에 과시한 것이며, 그가 말한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럽다는 인간은 바로 장철수라고 입을 모은다. 고향 창야를 떠나 해망에 도착한 장철수는 장기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나 건강이 악화 된다. 이식 된 장기는 박옥출의 몸에 안착한다.

마지막 사건은 해망에서 벌어진다. 방조제 도로공사에서 한 여고생이 크레인에 깔려 죽는 사고다. 횟집마을 주민 방천석의 장녀 방미호다. 딸을 잃고 난 방천석은 광명토건으로부터 위자료 1억 2천 만 원을 받는다. 이 돈으로 농협 빚과 밀린 이자를 청산 한 후, 해망을 떠난다.

소설은 기사를 쓰지 못하는 문정수, 귀금속을 훔쳐 달아난 박옥출, 수배자를 고해바친 장철수, 딸의 죽음 대가로 돈을 받는 방천석을 “비루하다”는 말로 압축한다. 이처럼,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다는 작가의 말은 후반으로 갈수록 구체화 된다. 김훈이 「공무도하」를 쓴 이유이자, 풀지 못한 숙제이기도 하다.




문체의 지향, 문물학자 타이웨이

「공무도하」의 또 다른 독서 포인트는 문체다. 문체에 공을 들이기로 유명한 김훈은,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문체를 간접적으로 등장시킨다. 바로, 노목희가 번역하고 있는 중국의 문물학자 타이웨이 교수의 책이다. 「시간너머로」라는 이 책은 놀랄 정도로 뛰어난 문체를 자랑한다. 이를 번역하는 노목희는 타이웨이 교수의 책에 빨려 들어간다.

“그의 문체는 순했고, 정서의 골격을 이루는 사실의 바탕이 튼튼했고 먼 곳을 바라보고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자의 시야에 의해 인도되고 있었다. 그의 사유는 의문을 과장해서 극한으로 밀고 나가지 않았고, 서둘러 의문에 답하려는 조급함을 드러내기 보다는 의문이 발생할 수 있는 근거의 정당성 여부를 살피고 있었다. 그의 글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성찰에 가까웠고 증명이 아니라 수용이었으며, 아무것도 결론지으려 하지 않으면서 긍정이나 부정, 그 너머를 향하고 있었는데 그가 보여주는 모든 폐허 속의 빛은 현재의 빛이었다.”

주목할 만 한 점은, 이 대목에서 단문쓰기가 중단된다는 것이다. 유독, 짧은 단문을 구사하던 소설은 타이웨이 교수의 문체를 이야기 할 때 만큼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인내심 있게 긴 문장을 보여주며, 미끄러지듯 흘러간다.

여기서 등장하는 타이웨이 교수의 글은 김훈이 소망하는 문체로 해석된다. 방송을 통해 작가는 “쓰고 싶은 글이지만, 직접 소설에서 보여주진 못했다. 그것이 나의 한계”라고 전한 바 있다. 실제로, 소설은 타이웨이 교수의 글을 직접적으로 내보이지 못한다. “주어와 동사만으로 된 소설을 쓸 것”이라고 밝힌, 김훈의 소망과 비교되는 문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타이웨이 교수의 글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성찰에 가깝다고 소설은 표현한다. 이 역시,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글을 선호한다는 김훈의 소망과 대비(對比)된다. 김훈 문체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자, 작가의 지향점이 투사 된 지점이다.


죽지 않는 돌고래 취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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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희망을 찾다, 노목희가 보여준 미래

김훈은 전작 「남한산성」에서 대장장이 ‘서날쇠’를 통해 마지막 희망을 보여준 바 있다. 임금이나 관료가 아닌 서민으로부터 찾은 희망은 파릇했다. 이번 작품 「공무도하」역시, 한 사람을 통해 희망을 보여준다. 바로 문정수의 애인 노목희다. 그녀 역시, 과거에 갇혀 있었으나 타이웨이 교수의 책을 작업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노목희는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늘 B학점을 맞던 노목희에게 지도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넌 왜 덤벼들지를 못하니? 뭘 그렇게 쭈빗거려. 힘을 줘서 밀어내봐”

그러나, 노목희의 화폭은 주저의 흔적을 떨쳐버리지 못하다. 도청소재지에서 열리는 공모전에서 낙선하고, 그림을 그만둔다. 그녀가 택한 일은 출판사 편집자였다. 전공을 살리지 못한 노목희는 과거를 잊은 채, 주어진 일에 몰두한다. 현실에 수긍하는 동안, 노목희의 숨겨진 재능은 새 생명을 얻는다.「시간너머로」의 표지를 직접 디자인 한 것이 계기가 된다. 노목희가 그린 낙타 그림 표지는 좋은 반응을 얻는다. 이를 본, 타이웨이 교수는 노목희에게 유학을 권한다. 노목희는 떠나기로 결심한다. 타이웨이 교수가 교환교수로 있는 스위스 바젤대로 떠나는 노목희는 문정수에게 마지막으로 묻는다.

“어제 또 야근했니? 목소리에서 야근한 냄새가 난다”

가볍고 무심한 노목희의 말에 문정수는 생각한다. “멀리 가는 구나. 그 낙타가 바로 너였어.”

머물 수밖에 없는 문정수와 떠나는 노목희는 묘하게 대비된다. 강을 건너다 빠져 죽은 백수광부와 달리, 노목희는 건강하게 날아간다. 「공무도하」에 나오는 유일한 희망이다.

소설 「공무도하」는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마지막 역시, 강변의 아침안개를 맞으며 경찰서로 차를 돌리는 문정수의 시선에서 종결된다. 끊임없이 재발하는 무좀을 참으며, 써야 하는 기사를 외면하며 문정수는 오늘도 기자로 살아간다. 써야 하는 것과, 쓸 수 없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의 옆모습은, 우리 모두의 그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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