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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만남

언어의 우주, 이어령

숭학당 2008. 10. 27. 13:35

기사게재 : <기획회의> 210호 만난사람

 

언어의 우주, 이어령

김민영 서평전문가 bookworm@rws.kr

 



'이어령'은 하나의 고유명사다. 어떤 형용사가 붙어도 이어령은 그저 '이어령'일 뿐, 변형되거나 부풀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수식어를 제어한다. 그건 이어령의 뿌리, 즉 '문화'에서 나오는 힘이다. 그래서 세상은 그를 필요로 한다. '문화'가 사회, 경제, 정치 각 분야를 넘나드는 동안 그 역시 바빴다. 문화부장관, 교수, 문화기획자, 극작가, 소설가, 편집자 등을 거쳐 지금은 <중앙일보> 고문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다. 2006년에는 '디지로그'라는 화두를 꺼내 한국 사회 전체를 흔들어 놨다. 디지털 시대의 각종 산물을 왕성하게 섭취하는 그의 식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컴퓨터 7대를 네트워킹해서 세계 각종 자료를 취합, 편집하는 것도 모자라 '에소프레소 북'의 범용화를 기다린다.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그의 지적 호기심과 향학열은 여전히 청춘이다. 김수영 김동리 황순원 등 쟁쟁한 문인들과 논쟁을 펼치던 20대의 열기는 지금도 식지 않았다. 그와의 인터뷰는 <중앙일보> 고문실에서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뉴 미디어, 디지털 세대, 한국문학의 위기 등의 화두를 거침없이 통과하는 그를 보며 질투심에 시달렸다.

김   중앙일보에 매일 나오신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세요?
이   강단에 설 때보다는 자유로운 편입니다. 전에는 시간이 나를 지배했다면, 지금은 내가 시간을 지배하죠. 그러다 보니 더 많은 책임이 따르는 것 같아요. 여전히 바쁜 건 마찬가지예요. 행사나 축사, 지금 같은 인터뷰나 방송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착잡해질 때가 있어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하루 24시간인데, 이렇게 보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지요. 앞으로는 가능하면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싶어요.

김   거절이라는 방법을 쓰면, 좀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요?
이   그건 시간의 경계와 연결되는 문제거든요. 우리는 엄밀하게 말하면 완전한 '개인'이 아닌 '누군가와 얽힌 나'에요. 언어만 해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잖아요.
예를 들어,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는 '맘마'라는 단어를 쓰기도 하지만, 윗사람에게는 '진지'라고 해야 하지요. 순수한 '나'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내 시간이 너의 시간이고, 너의 시간이 나의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나와 너의 경계가 불확실하듯 시간도 그런 거죠. 젊었을 때는 남들이 어디 숨었나 찾아다녔지만 지금은 숨어 있는 『나를 찾는 술래잡기』(이어령, 문학사상사, 1995)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너도 나도 숨어 있는 곳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어요.

김   그래도 여전히 자기 관리는 철저하시다고 들었습니다. 저녁 6시 이후에는 약속을 잡지 않으시죠?
이   그렇습니다. 6시 넘어서는 약속을 잘 안 해요. 주말하고 평일 6시 이후에는 되도록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책 읽고 글 쓰고 그래요. 일과는 비슷한 편인데, 밤 11 -12시쯤 잠들어서 새벽 5-6시 사이에 일어납니다. 규칙적인 편이죠.

김   공저작을 제외하면 50년간 50권, 1년에 1권꼴로 책을 쓰셨습니다. 지난해에는 베스트셀러 『디지로그』(이어령, 생각의나무, 2006)도 쓰셨고요. 이처럼 끊임없이 글을 쓸 수 있는 힘, 콘텐츠 생산 능력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이   나는 수렵-채집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에요. 누님들이 들판에서 나물을 캐는 것을 봤고, 나 역시 산에서 토끼잡이를 한 적도 있지요. 지금도 나는 서울이 아닌 시골에서 태어난 것에 감사해요. 인류 역사가 수렵, 채집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고려하면 나는 모든 문명시대를 고루 경험한 셈입니다. 수렵 채집기의 문명으로부터 농경문명, 산업문명 그리고 오늘의 정보문명시대를 한 생애에 전부 겪게 된 것이지요. 지식을 클릭 한 방으로 '내려받기' 하는 요즘젊은이들과는 분명히 다른 '신체적 지식'이란 것을 갖게 된 것입니다. 식민지와 전쟁 속에서 살아온 우리 세대를 가리켜 '불행했다'고 말하지만, 삶의 다양성, 다문화, 자연과의 소통을 직접 한 생애에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아주 드문 행운이라고 봅니다.

김   분명 클릭과 다운로드를 생활화하다 보니 저희 세대가 사고의 기간이 짧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세대가 가진 장점도 있겠죠.
이   물론이죠. 인터넷으로 지식을 얻는 방법이 다양해졌지요. 자신이 원하는 지식을 손쉽게 끌어 쓸 수 있고 동시에 블로그 같은 것으로 자신의 생각과 지식을 창출할 수도 있지요. 우리 세대가 고난을 헤쳐 나가는 무거운 베토벤이라면, 지금 세대는 즐거운 모차르트에 가까워요. 세계 취향도 베토벤에서 모차르트로 바뀌고 있잖아요. 태아에게 베토벤을 들려주면 얼굴을 찡그리는데 천상의 소리라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틀어주면 즐거워하는 것이 스캔된다고 해요. 불행한 운명 속에서 심각하게 살았던 베토벤은 날이 갈수록 젊은이로부터 멀어지겠지만, 그런 삶은 우리 세대에서 끝났으면 해요. 다만 밝고 즐겁게 사는 법을 안 젊은 세대들의 단점은 그러한 행운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점이지요. 그러다가는 그런 시대 그런 사회를 놓치게 될지도 모르지요.  

여섯 살부터 시작한 '삶의 글쓰기'
김   지금은 절판된 『한국의 명문』(이어령, 조선일보사, 2000)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유능한 목수는 못질을 하지 않는다." 글 쓰는 이를 목수, 접속사를 못에 비유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접속사나 군더더기 수식어를 쓰지 않는 명문장가십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글을 잘 쓸 수 있습니까?
이   백남준 씨가 내 이름을 풀이해 보낸 적이 있어요. 내 이름의 '어御' 자에는 '말을 제어한다' 즉 말을 다룬다는 뜻이 들어 있지요. 그래서 그는 말하는 말과 타는 말이 다 같은 말이기 때문에 나에게 달리는 말과 함께 큰 입 하나를 그려 보냈지요. '어령의 입, 한국의 입'이라는 글을 써 보냈죠. 백남준 씨의 해석이 내 글쓰기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고 봅니다. 내 직업은 말(言, 馬)을 다루는 기마족인 것이지요. 나에게 있어서 '말'과 '글'은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입니다. 유명한 학자, 교수 중에도 언어 감각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말을 잘못 다루면 낙마를 해서 다칩니다. 말은 말처럼 일직선으로 돌진하고 스피디하고 화살이 날아오는 전쟁터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달려갑니다. 우리 인문학의 위기는 바로 이 지식의 말 타기에서 낙마를 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말 다루는 솜씨는 다른 예술분야와 마찬가지로 반은 선천적일 때가 많지요. 서정주 선생이 그런 분이죠. 그의 타고난 언어 감각은 독보적입니다. 다른 분야는 노력으로 됩니다마는 창작 예술의 힘은 태어나기 이전의 유전자로부터 나온다고 봅니다. 만약 내가 남보다 다른 글재주가 있다면 아마 어머니로부터 받은 능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하셨나요?
이   그랬죠. 여섯 살 때 처음 동화를 썼지요. 물론 그것이 동화인줄도 모르고 말이지요.
글을 배우자마자 이야기를 꾸며대서 글을 썼는데 형들이 날 놀려주려고 어디에서 베꼈느냐고 그랬어요. 내가 쓴 것이라고 하니까 모두 웃으면서 "거짓말 마, 네가 정말 이 글을 썼다면 노벨상 탄다"라고 해요. 놀려주려고 한 소리인데 멋도 모르고 나는 글 쓰는 천재다, 라는 엉뚱한 자신을 가졌던 거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글을 읽는데 만족하지 않고 글을 쓰려고 했던 그 마음만은 분명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용기를 주신 형님들께 지금도 감사하고 있어요.

김   선생님의 글은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운반합니다. 스스로 보실 때 이성과 감성 중 어느 부분이 더 발달했다고 생각하세요.
이   학교 다닐 때 수학을 잘 했어요. 특히 논리로 하는 고등수학 미적분 같은 것을 잘했습니다. 체계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이런 논리적 사고가 창작보다 평론을 더 많이 하게 된 동기인 듯싶어요. 그러면서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대한 불안 그리고 공연히 눈물을 흘리는 감수성도 있었지요. 그래서 말년에 『디지로그』까지 쓰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학자나 예술가 어느 쪽으로도 크게 성공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커다란 의미의 '문화' 안에서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통합작업에서는 무엇인가 이룬 점도 있었다고 봐요.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의 시나리오, 이벤트 등 내 전공이 아닌데도 평가를 받을 만한 일을 남기기도 했지요. 새천년 준비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밀레니엄 베이비가 태어나는 장면을 리얼타임으로 생중계한 것은 세계의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것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을 성공시킨 예이지요. 그리고 새천년 맨 처음 일부변경선에서 떠오르는 햇빛으로 점화한 천년의 불을 채화한 것도 그런 이벤트 중 하나입니다. 포항 호미곳에 가면 지금도 그 천년의 불이 타오르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런 창조적인 작업에 사람들은 별로 흥미를 느끼지도 평가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이지요. 그래서 조금은 외롭게 살아왔다고나 할까요.

경청, 창조적 사고의 비결
김   『흙속에 저 바람 속에』(이어령, 문학사상사, 2002)부터 개정판으로 나온 『우리문화박물지』(이어령, 디자인하우스, 2007)까지. 무형의 사물을 재해석하는 통찰력을 보여주셨습니다. 『흙속에 저 바람 속에』에 등장하는 정자에 대한 해석이나 『우리문화박물지』에 나오는 돗자리의 의미 규정 등은 무척 중요한 해석입니다. 고정된 사물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방법이 있을 듯합니다.
이   창조는 '하나'가 아니라 '통합'입니다. 예컨대, 만두를 먹을 때 속과 겉을 같이 먹잖아요. 그래야 제 맛이 나죠. 겉과 속을 따로 먹는다면 만두 맛이 나지 않겠죠. 비평과 해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어로는 임파테이션impartation이라는 말이 있지만 통째로 아우르고, 씹어야지요. 그래야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어요. 사물을 도구로 볼 때에는 기능만 생각하지요. 어떤 부분만을 강조해서 봅니다. 하지만 멈춰서서 한 대상으로 생각하면 그것들이 말을 걸어오지요. 생각한다기보다 사물들의 말을 듣는 것이지요. 그걸 글로 표현하는 게 내 일입니다. 나는 '생각의 상자'에 갇히지 않도록 애써왔어요. 어떤 틀에서 끊임없이 도망치고 자유로워지려는 훈련이지요. 전쟁이 날 때에도 나는 내 젊음을 조국이나 민족이라는 외부적인 틀에 가두려 하지 않았습니다. 전에 백남준 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목숨을 걸고 예술 하나 하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거기다 민족문제까지 해야 하는 우리 예술가들은 얼마나 힘이 들까." 생각해보세요. 굳이 '민족'을 부르짖지 않아도 백남준 씨가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면 그 자체가 애국이고 민족을 위한 일이 아니겠어요. 무엇에 얽매이는 순간 창조적 사고는 고갈됩니다.

김   최근,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신 일이 화제가 됐습니다. 마음먹게 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이   종교를 갖게 된 것은 일종의 도전입니다. 비종교적인 삶을 살아온 나에게 새로운 문이 열린 거죠. 종교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는데, 그건 절대 믿지 않고서는 풀 수 없는 문제였어요. 그래서 죽기 전에 하지 않았던 걸 해보자는 마음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쩌면 내가 정말 영성적인 존재가 돼서, 지금까지 문화예술에서 느끼지 못한 어떤 영역에 도달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아직은 아니에요. 그저 영성을 체험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종교를 갖게 되면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 다가옵니다. 믿는 순간, 박해가 시작되는 거죠. 기도할 때 늘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라고 하잖아요. 나는 내 자신을 의심합니다. 너는 정말 믿는가. 이러한 회의심이 들 때 벌써 나는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에 계속 시험에 들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신앙이 필요한데 그 순간 더 큰 시험에 빠질 수도 있지요. 지금은 주기도문을 외우면서도 그저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되풀이하는 상태입니다.

종이 책의 미래, 여전히 낙관적
김   뉴미디어의 발달이 하루가 다르게 세상을 바꿔놓고 있습니다. 종이 책의 미래, 어떻게 보십니까?
이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서 전자책 읽기가 각광 받고 있지요. 그러나 어떤 미디어도 종이책 고유의 자리는 대신할 수 없을 겁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활자 미디어 시대보다 뉴 미디어 시대인 지금 문자를 더 많이 쓴다는 겁니다. 휴대전화 문자를 비롯해 블로그 등을 이용한 글쓰기. 심지어 텔레비전조차 자막 내보내기에 바쁘죠. 맥루한은 활자 미디어의 쇠락을 문자문화의 쇠락으로 봤는데, 나는 이 말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뉴 미디어가 겨우 편지밖에 쓸 줄 몰랐던 일반 사람에게도 '글'을 쓰게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문자를 운반하는 도구가 '무엇인지'가 관건일 뿐 문자는 끊임없이 요구되고 사용될 겁니다.
문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 문자, 블로그, 이메일, 심지어 텔레비전 자막까지 '문자'를 사용하고 있어요. 즉 영상과 문자가 아닌 '문자와 문자간의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PDA, 휴대전화, 텔레비전, 컴퓨터 문자와 종이책 문자가 서로 겨루고 있는 거죠. 하지만 결과는 자명합니다. 당연히 종이책이 유리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휴대성 때문이에요. 문자를 운반하는 수단으로 뉴 미디어는 종이책에 비해 활용성이 떨어집니다. 어디서나 구기고, 접고, 찢고 넣을 수 있는 종이책과 달리 무거운 텔레비전 세트, 노트북, 휴대전화 등 디스플레이 장치들은 무게나 크기 면에서 사용자에게 불편함을 주죠. 종이책의 뛰어난 휴대성·해상도·가벼움을 따라올 수 있는 액정판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종이책은 오히려 '해리포터' 시리즈처럼 지구 규모의 시장을 갖게 되지요. IT 때문에 오히려 그런 대형 베스트셀러의 종이책이 가능하게 된 것이지요.

김   종이책에 대항할 무언가가 등장하지 않을까요?
이   가능성은 있어요. 종이 같은 액정판이나 개인이 인터넷에서 자료를 다운받아 그 자리에서 고속으로 프린트하여 제본할 수 있는 '에소프레소 북' 같은 장치가 등장하고 있죠. 15분 정도면 디지털을 종이책으로 옮길 수 있는 전자책도 종이책도 아닌 디지로그 책이 생기는 셈이지요.

김   엘빈 토플러가 말한 '프로슈머' 활동이 출판에서도 일어나는 군요.
이   맞습니다. 이제 개인은 소비만이 아닌 제작자의 기능도 할 수 있어요. 모두 인터넷 보급 덕분이죠. 나중에는 신문 역시, 배달된 신문이 아니라 독자가 직접 디지털 신호로 자료를 받아 집에서 프린트해서 보는 시대가 올 겁니다. 원하는 신문사의, 원하는 지면을 골라 편집, 프린트해서 읽는 거죠.

지금, 위대한 문학이 나오지 않는 이유
김   한국문학의 위기가 거론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극소수의 몇몇 작가를 제외하고, 읽히는 작가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이제 소설 읽는 시대는 끝난 걸까요?
이   역설적으로 말해 나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누가 문학을 이렇게 만들었나"라고 말입니다. 검열도, 억압도 없는 이 자유로운 시대에 왜 위대한 문학이 나오지 않는 걸까요. 이른바 군사독재와 정보기관의 검열로 표현의 자유가 없어서 좋은 글을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그때에는 많은 젊은 작가 시인, 이를테면 소설의 김승옥 황석영 조세희 최인호 이문열, 그리고 시인에는 김지하 같은 대형 문인들이 등장했지요. 그런데 표현의 자유가 거의 100퍼센트인 오늘날에는 그런 열기와 거물 작가 시인이 눈에 띄지 않아요. 문학의 위협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작가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문학과 예술은 정치, 경제 권력과의 끝없는 긴장 상태에 놓여야 합니다. 스스로가 저항해야 할 대상이 있어야 좋은 것이 만들어집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역설적으로 지금 작가들이 더 글쓰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무언가 저항할 것이 사라진 거죠. 역사가 나쁜 짓을 할 때 문학은 더 위대해집니다. 저항의 문학이 '불'이라면 창조의 문학은 '물'입니다. 불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지만, 물은 그렇지 않아요. 지금까지 한국문단의 명맥을 이어온 것이 불의 문학이라면 이제는 물의 문학이 나설 차례입니다. 아무런 프리미엄 즉 전쟁이나 억압을 받음으로써 작품 이외의 정치성으로 바람을 타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창조력' 하나만으로 평가받는 문학이 생산된다면 그때 비로소 진정한 한국문학의 봇물이 터지게 될지 모릅니다.

김   그럼에도 선생님은 끊임없이 글을 쓰고 계십니다. 도구도 여전히 펜이 아닌 키보드로 말입니다. 글쓰기 방식에는 앞으로도 변화가 없겠죠.
이   쓰는 건 그저 'tool'일 뿐이에요. 키보드로 쓰면 정성이 덜 들어가고 손으로 쓰면 더 정성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죠. 옛사람을 예로 들면 설명이 쉬울 거예요. 붓으로 한자 한자 써내려가던 그들에게 지금 작가들처럼 펜이나 볼펜으로 쓰는 사람들은 얼마나 이상했겠어요. 헤밍웨이도 타이프로 글을 썼어요. 그런데 존 스타인벡은 연필로 썼죠. 그렇다고 스타인벡을 그 때문에 더 좋은 작가라고는 말하지 않아요. 결국 도구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컴퓨터든 펜이든 오직 수단이요 습관일 뿐입니다. 수단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작가의 본질이 아닙니다. 필기구 자체의 '진화' 과정일 뿐이죠. 앞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대부분의 작가들이 컴퓨터로 글을 쓰게 될 겁니다. 하지만 '무엇으로' 쓰느냐는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무엇을'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나는 계속 컴퓨터로 글을 써왔고, 지금도 그게 익숙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쓸 겁니다. 왜냐하면 도구적 가치, 스피드 퇴고, 자료 검색, 편집기능 등에서 불필요한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본질적인 작업을 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보태주니까요.

김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일도 좀 줄이셨으면 합니다.
이   그래야죠.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을 텐데, 부질없이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되겠죠. 좋아하는 책 읽고, 글 쓰면서 남은 생의 궁금증을 풀어갈 생각입니다.

그는 자신을 '문화인'이라는 단어로 규정했다. 무엇을 해도 '문화'라는 카테고리에서 뛰놀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화의 영역이 한계 없이 확장되는 지금. 여전히 그는 '문화'에서 가장 필요한 인물이자 리더다. 어쩌면 과거보다 지금이, 지금보다 미래가 그에겐 더 흥미로운 시간일지 모른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을 그는 궁금해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접해 보길 원한다. 우리 역시 그렇다. 그의 오감과 부딪치는 것이 더 많아지기를, 또한 그것이 '이어령'의 말과 글로 재해석되기를 바란다. 그가 '덜' 바빠 더 많이 쓰길 바라고, 할 말이 '더' 늘기를 바란다. 그것이 우리 시대가 '이어령'에게 전해 받을 가장 큰 선물이다.

나비가 메트로놈의 박자에 맞춰 날고 있는가.
꽃이 디지털시계처럼 초 단위로 피어나는가.
아니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가 연속적인 것이요 불규칙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완성된 것이 아니다.
읽는 사람의 상상력 속에서 조금씩 발표되어 가는 머루주이다.
― 『디지로그』 서문

기사게재 : <기획회의> 210호 만난사람


댓글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bkugotit.tistory.com BlogIcon 젤가디스 저도 요즘엔 왜 좋은 문학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어느정도 수긍이 가는 답변을 제시해 주셨네요. 특히 미국 아마존사이트에서는 아마존 킨들이라는 기계를 통해 전자책을 무선으로 다운받아 전자잉크로 써진 책을 볼수도 있고 신문도 볼 수 있고 그런데 아직까지는 가격이 좀 비싼 편입니다. 359불이라 웬만큼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면 사기가 좀 그런 가격이지요. 한 10년 아니 5년만 지나면 적절한 가격에 팔릴거 같아 기대가 됩니다. 100불 이하로 떨어지겠지요. 전자잉크라 시력도 보호가 된다니 일석이조죠. 2008.10.28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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