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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책장 우측에 꽂혀있던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푸른숲. 1999)을 꺼내들었습니다.

 

오래 전에 읽은 책인데, 왠지 다시 보고 싶어졌던 것이죠. 그런데, 웬일인지 전에는 무난히 읽었던 문장들이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뜻이 이해가 되지 않아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기 힘들었습니다.

글쓰기에 대해 그리 예민하지 않던 시절과, 지금은 조금 다른 독자가 되어 버린 것일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누가 읽어도 이 책의 번역은 결코 매끄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대목 예를 들어 볼게요.

 

제1부

어린 시절과 첫 시작

제1장 어린 시절의 비극

 

발자크처럼 과도한 상상력의 힘으로 지상세계와 나란히 또 다른 우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천재성을 가진 사람이, 하찮은 개인적인 삶의 에피소드들을 언제나 냉정한 현실하고만 연결시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 본문이 시작되는 첫 단락입니다. 몇 번을 읽어 겨우 뜻을 헤아렸어요. 이해력이 떨어지는 건가요? '상상력의'라는 단어 앞에 굳이 '과도한'이라는 부적절한 수식어를 넣거나 '지상세계와 나란히 또 다른 우주를'이라는 지극히 문어체적인 표현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입니다. 너무 지나치게, 원작에 충실히 번역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구요. 저라면 이렇게 고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발자크의 상상력은 또 다른 우주를 만들어 낼 만큼 뛰어났다. 그런 천재성을 가진 사람이 삶의 작은 에피소드를 냉정한 현실과 연결시켰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다음 문장을 살펴볼까요?

 

그에게 있어 모든 것은 자기 의지의 탁월한 형성능력에 종속되었다.”

 

-> 이런 문장 역시 같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쳐볼까요.

 

“그는 모든 것을 자신의 탁월한 의지에 의해 만들어나갔다.”

 

이 문장은 어떤가요?

 

특징적인 일이지만 자신의 삶의 에피소드들을 이렇게 멋대로 변형시키는 능력은 시민적 존재의 - 보통은 변화되지 않는 - 기본사항, 즉 그의 이름에서 드러난다.”

 

-> 난감한 문장입니다. 마치, 학교 과제 번역본을 보는 듯한 느낌. '시민적 존재의 - 보통은 변화되지 않는 - 기본사항'이라는 표현을 어떻게 읽히는 문장으로 표현할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제3부 - 삶으로 쓰는 소설

제1장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

 

발자크가 자기 앞에 놓인 것을 본 이 과제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리고 발자크는 그것을 위해 필요한 작업의 분량에 대해서 모르지 않았다.”

 

-> 주술호응이 되지 않을 뿐더러, 문장이 매끄럽지 않습니다. 이렇게 고치면 어떨까요.

 

“발자크는 자기 앞에 놓인 어마어마한 과제를 목격했다. 발자크는 그 필요한 작업 분량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제5부 마지막 환상의 시간

 

제4장 수집가 발자크

 

1845년에서 1846년에 쓰인 발자크의 편지들을 서명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무관한 사람에게 내주고 글쓴 사람의 관심에 따라 그의 직업을 맞추어보라고 한다면 아마 골동품 상인이나 그림 수집가 혹은 토지상인이나 주택중개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 이런 문장들은 수없이 등장합니다. 한국 독자들은 고려치 않고, 오직 원문에 충실히 번역만 해 내려고 했다는 느낌을 (마치 기한에 쫓기듯) 도무지 지울 수가 없습니다. 주어가 무엇인지, 술어가 무엇인지... 이렇게 고쳐볼까요.

 

“1845년에서 1846년에 쓰인 발자크의 편지들은 글쓴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독특하다.  예컨대, 이 편지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보여주며 "글쓴이의 직업을 맞춰 보세요"라고 한다면 아마 골동품 상인, 그림 수집가, 토지 상인, 주택중개인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당시 쓰인 편지들은 발자크의 수집가적 기질을 여실히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발자크의 작품을 좋아하고 저자 츠바이크의 노고, 번역자와 출판사의 세공 또한 높이 삽니다. 이들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이처럼 가치 있는 평전을 접하기란 쉽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번역서 상당수가 이처럼 원문에 충실한 것을 목적으로 하다 보니 국어인지, 영어인지, 불어인지, 독어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모호한 문장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오래 전에 번역되어 나온 책들은 더 하구요.

 

원문에 충실한 것이 번역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가독성을 해치는 수준이라면 번역자의 한국어 실력이 의심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읽은 <발자크 평전>, 난해한 원서 수준으로 다가오기만 합니다.


댓글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redhawkblog.tistory.com BlogIcon 붉은매 크게 공감합니다.

    저도 학창시절 난해해서 포기했던 많은 외국의 번역서들이
    저런식으로 '잘못된 번역'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고 많이 한탄을 했지요;;;
    2008.10.12 17:34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bkugotit.tistory.com BlogIcon 젤가디스 저는 예전에 에드가 앨런 포우 작가의 번역본을 읽는데 글을 읽고는 있는데 도무지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아 20~30페이지 정도 읽다가 책을 놓고 다시 펼치지 않았던 기억이 나네요. 2008.10.12 17:41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hello-mimi11.tistory.com/ BlogIcon hellomimi 공갑하고 갑니다.. 제가 영문학 전공이라 번역을 해봐서 아는데 그런데 말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더군요..
    번역은 영어만 잘해석하는게 아니라 책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전달하는 문학적 소질도 있어야할듯..
    2008.10.12 18:00
  • 프로필사진 지나가다... 번역은 원문에 충실하게 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단, 번역가가 국문에 능통해야 겠지요. 이 글의 사례에 나온 번역문을 볼 때 번역가의 국어 실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원문에 중실해서 벌어진 문제가 아니라 국어 작문 실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008.10.16 14:33
  • 프로필사진 nina 어차피 한 언어는 다른 언어로 등가로 번역될 수가 없는 것이니 만큼,
    번역가가 적극 개입해서 한국말로 완전 매끄럽게 할지,
    원문을 최대한 살려서 원작자의 특징과 개성을 충실하게 전달할지는
    번역가의 영원한 숙제인 것 같습니다.

    전자를 좋아할지 후자를 좋아할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 같은데,
    한국말로는 좀 어색해진다해도 후자에도 분명한 장점들이 있습니다..

    저는 안인희씨의 이 책 번역이 상당히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런 복잡한 복문과 과도한 형용사는 원작자인 츠바이크의 개성이기도 하고,
    발자크의 캐릭터를 나타내는 것에도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독성높은 단문으로 바꾸었다면
    츠바이크의 추상적 작품 세계를 충실히 전달해내기도 힘들었을 것 같고
    그 만의 개성과 의도가 많이 날아가버렸을 것 같네요.

    저런 문장들도, 분명히 고민 고민 끝에 선택한 결과물일겁니다.
    번역가 분께서 저 책에 상당한 애정을 갖고 상당한 노력끝에 번역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9.03.02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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