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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문학상이 르클레지오에게 돌아갔다는 소식 듣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일전에 르클레지오의 강연회에 다녀온 적이 있고, 그 내용을 생생히 풀어 강연록을 올린 적이 있었답니다.

르클레지오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 본 독자 혹은 이름은 들어봤지만 아직 작품을 일지 못한 독자를 위해 그의 강연록을 올렸던 포스팅을 다시 올려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를 알게 된 독자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르클레지오는 프랑스 앵테르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상을 받는다는 건 (작가에게는) 시간을 얻는다는 걸 의미하며, 글을 계속 쓰고자 하는 욕망을 주기도한다. 작가는 읽혀지기 위해, 어떤 반응을 얻기 위해 글을 쓴다. (상을 받는 것은) 그런 반응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노벨문학상이 그에게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하나의 욕망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동안 <홍수>와 같은 걸작을 다시한번 남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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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르 클레지오 강연회에 취재차 다녀왔다.
눈내리는 수요일 강연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르 클레지오의 엄숙하고 따뜻한 음성이
낭독하는 그의 '심연적' 문학에 깊이 젖어들었다.
 
오늘 강연의 백미는 르 클레지오의 문학 강연.
그는 20여분가까이 '프루스트'와 '랭보' '프랑소와즈 사강'의 예를 들어
문학에 있어서의 '기억과 상상'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 했다.
 
“상상력이라는 것은 없다. 단지 기억만이 있을 뿐”
  
르 클레지오를 매료시킨 단 한줄의 문장.
바로 프루스트의 말이었다.
 
그의 말대로 '기억'이란 얼마나 관념적인 것인가.
보이지 않는 것을 기억하고, 시간을 도려낸다는 것은 지극히 '비대중적인' 행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흰 여백을 향해 외로이 고함을 질러대는
작가들의 글쓰기는 언제나 많은 부분
의존한다.
 
르 클레지오는 자신의 문학세계가 유년시절의 기억에
상당부분 기인한다고 말했다.
 
르 클레지오와 최수철 소설가가 주고 받은 <황금물고기>의 낭독은
오늘 강연회에 참석한 많은 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언제나 그렇듯 작가의 음성을 통해 듣는 문학은
색다르고, 역동적이다.
 
쉬이 지나치고 잊어버리는
귀한 언어들이 알알이 몸에 박히는
이 낯선 체험을
두고, 두고  잊을 수 없을 것 이다.

 
*르 클레지오*
 
1963년 첫 소설 <조서>로 르노도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한 르 클레지오는 이후 <열병> <홍수> <물질적 황홀> <성스러운 세 도시> <우연> <황금 물고기> 등을 발표했다. ‘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신화’로 자리 잡았다.
 
 
*강연회 요지*
 
작가에게 있어 기억과 상상이란 무엇일까요. 삶의 경험은 없었지만 놀라운 상상력으로 좋은 작품을 쓴 작가는 수 없이 많습니다. 에밀리 브론테를 그 예로 들수 있습니다. <폭풍의 언덕> 같은 작품은 소설 속의 내용을 체험하지 않았는데도 셰익스피어를 능가하는 감동의 작품을 완성시켰습니다.
 
프랑소와즈 사강은 또 어떤가요. 그는 18세에 슬픔이여 안녕! 이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많은 경험을 하지 않았던 어린 나이에고 이 같이 훌륭한 작품을 썼습니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 기억이라는 것은 매우 주요한 자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어, 독서, 담화 등을 통해 기억은 전해집니다.
 
랭보를 예로 들어 볼까요. 그는 17세 약관의 나이에 불어로 쓴 가장 아름답고 폭력적인 시를 썼습니다. 그는 아주 작고 평범한 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이었고 문학적 교류를 나눈 친구도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그는 훌륭한 작품을 썼죠. 놀라운 어휘로 알 수 없는 해양세계에 대한 시를 써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들의 영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체험일까요? 화학적인 반응에 의해서 온 것일까요? 정말 흥미진진한 질문입니다. 이것은 프루스트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프루스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상상력이라는 것은 없다. 단지 기억만이 있을 뿐”
 
프루스트에게 상상력은 없었습니다 전부 기억뿐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회상합니다다. 거울을 통해 들어간 것처럼 과거에 일어난 것을 회상하고 사라져 버린 것을 환기시킵니다. 평범한 일상을 이야기 합니다. 인간관계도 지극히 추상적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감동시키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저 역시 프루스트가 처음에는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거의 불가능한 독서였습니다.
 
그러나 “상상은 없다. 단지 기억만이 있을 뿐”이라는 문장을 읽고 프루스트를 시작했고 그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기억이란 정말 놀라운 것이죠.
 
저는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제가 쓴 여러 작품들은 저의 어린시절에 기인합니다. 어머니, 동생, 가족모두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린시절 전쟁을 겪은 저는 전쟁을 피해 은둔처를 찾아 그곳에서 중세적인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도피처이긴 했지만 밀을 수확하는 등 지극히 농가적인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요. 이 추억은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기억은 영국인 의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로 가던 항해였습니다. 그 배에는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몇몇 사람들은 그들에게 쇠망치를 주며 망치질을 하라고 시켰습니다. 그때 들었던 쇠망치 소리는 이상하리만치 제 뇌리에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그 쇳소리와 리듬은 지금까지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저에게 있어 글쓰기란 “왜 쓰는가”에 대해 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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