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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격주간잡지 <기획회의>

기획회의가 만난 사람

 

“내가 발바닥으로 글을 쓰는 이유”

김민영  서평전문가 ● bookworm@rws.kr

 




“쓰고 싶은 작품과 쓸 수 있는 작품은 다르다.”  김탁환의 소설 『혜초』(1,2권)의 작가후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유랑에  대한 욕망’을 보여주는 말이다.  여기서 ‘쓰고 싶은 작품’이란 ‘가고 싶은 길’을 뜻한다. 장편소설 『리심』과 『혜초』를 쓰며 김탁환은 발로 쓰는 글쓰기를 체험했고 그것에 중독됐다. 김탁환의 원고지는  일본, 모로코, 프랑스에 이어 인도, 우즈베키스탄, 중국까지 확장됐다.

이번 작품 『혜초』는 광활한 답사뿐 아니라 새로운 소설세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보통의 소설이 사건  혹은 시간에 의한  전개방식을 택하는 것과  달리 『혜초』는 ‘공간축’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인물의 공간 이동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이다. 덕분에 소설은 꽤 어렵게 읽힌다. 본문의 초입에 등장하는 것은 혜초 스님이 아닌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이다. 혜초와 고선지의 본격적인 만남은 1권의 중반에 이르러서야 윤곽을 드러낸다. 소설의 앞과 끝을  나비의 날개에 비유한다면, 중반은 몸인  ‘버터플라이’의 형국을 띤 독특한 구성이다. 『혜초』의 이야기 전개방식은 여러모로 낯선 구석이 많다.

왜 이런 시도를 감행한 것일까. 김탁환과 나눈 이번 인터뷰는 그 속뜻을 추적하는 과정으로 구성했다. 6,000자 남짓 되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400페이지에 달하는 두 권짜리  소설로 환생시킨 과정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대화는 『혜초』를 집필한 상암디지털미디어센터에서 진행됐다.

김민영 (이하 민) ― 마지막으로 뵌 게  2006년 12월이니까 햇수로 2년이 흘렀습니다. 대전 카이스트에서 『발자크평전』 이야기를 나눈 게 엊그제 같은데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김탁환 (이하 탁) ― 계속 읽고, 쓰며 지냈어요. 『혜초』를  쓰기 위해 해외 답사를 다녀왔구요. 지금은 『혜초』와 관련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어요. 『혜초』가 원래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프로젝트라 이와 관련된 일인데요. 정식명칭은 ‘통일신라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디지털콘텐츠 개발’이에요. 9월 초에 홈페이지 오픈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 일들을 하고 있어요.  
― 소설 홈페이지 ‘혜초hyecho.minumsa.com’도 오픈했죠. 이 사이트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 소설 홈페이지가 책 속의 내용을 다뤘다면, 새로  오픈하는 사이트는 더 객관적인 자료들이 들어갈 거예요. 답사하면서 찍은 사진, 동영상 그리고 3D로 만들어놓은 것 등인데요.
한마디로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라 할 수 있죠. 소설 홈페이지와는 성격이 아주 달라요.

혜초, 아시아 대표 콘텐츠… 동영상, 디지털콘텐츠도 구상

 

 

 
―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문화원형사업으로 소설이 선정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죠?
― 1년에 10개 정도 선정해 500억원 정도의 예산을  들이는 아주 큰 사업이에요. 지금까지 130개 정도가 선정되었고, 혜초는 그 중 하나입니다. 무엇보다 혜초라는 인물을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다는 바람이  가장 컸어요. 『왕오천축국전』을  디지털콘텐츠로 개발하겠다고 문화원형 사업 공모에 응한 것이나, 온라인 공간에 홈페이지를 만든 것 역시 그 때문이구요.
소설로 시작했지만 동영상, 디지털콘텐츠, 시나리오 같은 다양한 콘텐츠로 발전시키려고  해요.

― 혜초를 콘텐츠 관점에서 보게 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국가사업으로 확장시키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야말로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를 대표하는 콘텐츠라고 생각했어요. 혜초를 알리게 되면 외국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구요. 그러려면 혼자서는 불가능했어요. 정부와 연결해 만들어가야 했고, 공식적인 프로젝트도 필요했죠. 제가 학교에 있다 보니 시간이 자유롭지 못해, 연구과제로  만들면 학기 중에도 가능하겠다 싶었습니다. 준비하면서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어요. 하나는 혜초 스님이 다닌 루트가 너무 방대하다는 것이었는데, 여기에 도움을  주신 분이 정수일 선생님입니다. 혼자 공부하면 30년이 걸릴 일을 도와주셨어요. 또 하나는 이야기를 어떤  형식으로 만들어갈 것인가의 문제였는데 정말 고심을 많이 했죠.  

― 정수일 씨와의 여정은 어땠나요.  『왕오천축국전』을 번역하셨으니 동반자로선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을 것 같은데요.
― 아주 더운 여름에 인도에 갔는데 비가 많이  왔어요. 인도에서 처음에 돌았던 코스가 석가모니가 있던 곳이었는데, 여러 가지 느낌을 받았어요. 가장 또렷했던 건 여러  사람들의 길이 중첩되는 느낌이었는데, 석가모니가 가셨던 길을 한참 후에 혜초 스님이 가셨고, 또 법정 스님이 다녀오셨고. 정수일 선생님도 젊은  시절 그 길을 밟으셨구요. 이제 드디어  내가 여기에 왔구나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같은 길을  지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부 다른 거니까. 여러 텍스트가 겹쳐서 다가왔죠. 정수일 선생님과 동행해서 가장 좋았던 건 장소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거였어요. 덕분에 많은 영감을 얻었죠.

― 집필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나요. 답사와 집필이 동시에  진행됐는지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는지 궁금해요.
― 대부분 이동 중에 썼어요. 메모하고, 현장에서 노트북으로 쓰기도 하고요. 하루에 2-3시간 밖에 안자면서 강행군을 했습니다.  문장은 돌아와서 고치는 한이 있더라도,  현장에서 쓰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곳 냄새를 그대로  담을 수 있으니까요. 그건 사진으로 찍어도  알 수 없는 거거든요. 사진도 찍고 녹음도 하고, 글도 쓰고 선생님과 이야기도 나누고 바쁘지만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혜초』에 나오는 타클라마칸 사막이나 인도에 대한 묘사를 보고 어떤 분들은 아주 생생하다고 말씀하세요. 전부 그때  느꼈던 바람, 소리, 냄새를 문장으로 담았기 때문이에요. 그것 때문에 답사를 가는 거죠. 골방에서 꺼내는 상상이 아니라 취재를 통해 쓰는 사실이 긴장감과 생동감을 주죠.


큰 깨달음의 자리인 마하보리는 새 삶을 의미합니다. 한 삶의 시작은 한 삶의 끝입니다.  아무것도 죽이지 않고 새 삶만 얻겠다는 것은 욕심입니다. 홀로 나듯 홀로 죽습니다. 천축까지 올 때 많은 것을 버렸듯이 천축을  떠날 때도 많은 것을 버려야 합니다.  제가 버린 것들을 길 위 돌멩이처럼 폅니다. 부모를 버린다, 친구를 버린다, 고향을 버린다, 돈을 버린다, 명예를 버린다, 익숙함을 버린다, 취미를 버린다, 어제를 버린다, 오늘을 버린다,  내일을 버린다, 나를 버린다, 버린다는 생각을 버린다!(『혜초』)

6,000자의 『왕오천축국전』이 두 권의 『혜초』로 만들어지기까지

 

 



― 『왕오천축국전』을 처음 봤을 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 음… 먼저 알아가는 과정에선 신라라는  나라 자체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어요. 혜초 스님뿐 아니라, 그 전에 바다와 사막 길을 떠났던 신라승도 많았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실들이 여전히 많아요. 그  안엔 제가 쓸 이야기가 많이 묻혀 있죠.  일단 원문이 아주 건조하다 보니까 이걸 소설로 옮길 땐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까, 그걸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 6,000자도 안 되는 원문을 소설로 만든다는 것은 굉장한 ‘허구’를 요하는 작업입니다. 이야기를 만들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어떤 건가요.  
― 원래 생각했던 것이 계속 바뀌었어요. 공부하면서 답사하면서 계속 바뀌었던 것 같아요. 좋은 소재이긴 하지만 그대로 쓰면 재미가 없을 것 같고. 그래서 판타지를 넣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왕오천축국전』을 소설로 옮긴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았어요.
하나는 아주 리얼한 이야기, 다른 하나는 판타지죠. 전자는 정수일 선생님께서도 너무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을 주셨어요. 저도 생각이 비슷했구요.  이런저런 고민 끝에 결국, 혜초라는 인물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쓰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혜초를 표현할 만한 단어가 여행가라면 그가 갔던 공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써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게  가장 여행과 닮은 소설이겠다 싶었어요.

― 그래서 소제목이 전부 공간 이름이네요.
― 그렇습니다. 혜초가 움직인 동선에 따라 이야기를 구성했어요. 거기다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변화를 넣었구요. 공간과 시간을 동시에 움직이는  ‘데칼코마니’ 즉 나비의 날개처럼 이야기를 써보자는 생각으로 출발했어요. 맨 끝에서 시작해서 중간에 좁혀지는 그런 구도죠. 형식을 미스터리로 잡았기 때문에 그런 구성이 필요했어요.

― 때문에 좀 어렵게 읽히는 면이 있어요. 내용이 어렵다는 게 아니라 설정이 그런 건데. 예컨대 처음에 등장하는 고선지 장군이 과연 주인공 혜초랑  무슨 관계가 있을까. 독자라면 그런 의문을 갖게 될 것 같아요.
― 제가 어느 정도 의도한 부분이에요. 이야기를 ‘툭툭’ 던지다가 거리가 조금씩 좁혀져서 중간쯤에 두 인물이 만나는 구도. 그런 걸 의도한 거죠.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쓴 소설 중 가장 문학적인 작품이 아닌가 해요. 내용뿐 아니라 형식을 철저하게 주인공에게 맞춘 거니까요. 어떤 스타일로 쓸 것인가의 문제로 많이 고민했어요.

― 문체에도 많은 변화가 느껴집니다. 전작들보다 훨씬  탐미주의에 끌리고 있다는 인상이에요. 예컨대 혜초의 첫 등장도 “저는, 저는, 저는, 저는 여행자입니다. 아닙니다. 저는 수도승입니다. 아닙니다. 저는 신라인입니다. 아닙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인간입니다…”  이렇게 시작하거든요. 사건이 아닌 말, 읊조림, 탄식으로 시작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때로는 시처럼 읽히는 대목들도 많구요.
― 이번 책을 쓰면서 『나, 황진이』  때로 돌아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  내가 정말 탐미주의적이구나, 내가 정말 문학을 사랑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문체의 변화는 『혜초』를 통해 이루고 싶었던 것 중 하나인 것  같아요. 『혜초』는 김탁환이 쓴 아라비안나이트, 그쯤으로 생각하셔도 무방할 거예요.

― 『리심』에 이어 두 번째 답사를 거치셨어요. 영화로  치면 두 번째 로드무비를 마친 셈인데, 어디론가 떠나는 인물에 끌리시는 것 같아요.
― 아내가 저한테 역마살이 있는 것 같다고 했어요.  전에는 안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소설 쓰는 방식이 바뀐 것 같아요. 답사를 다니면서, 소설의 리얼리티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처음엔 이번 작품  제목을 ‘길’로 할까도 생각했어요.  결국 여행이란 길, 혹은 마을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여행을 왜 가느냐 묻는다면, 전 낯선 마을에서 새로운 벗을 사귀기 위해 간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 여정을 거친 사람들의 뒤를 쫓으며, 소설을 쓰는  것이 너무나 즐거워요.

― 이야기를 듣다보니 전작 『열하광인』이 생각납니다. 연암과 혜초를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여행가로서 비교를 해주신다면요.
― 어떻게 보면 둘 다 아주 ‘황당한’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어요. 연암은 여행을 가면 모든 걸 메모했어요. 거의 편집증 수준이었죠. 『열하광인』 쓰면서도 느낀 건데, 연암은 자신에게 온 느낌을 하나도 안 놓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 내용을 모두  요약하고, 사람을 만난 느낌도 꼼꼼히 기록하고. 그러니 『열하일기』는 그야말로  모든 게 담긴 여행기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도 연암은 항상 그게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계속 고쳐야 한다고 말했구요.
그에 비하면 혜초 스님은 정반대 스타일이에요. 『왕오천축국전』에 나온 자료들은 아주 고급 정보거든요. 단순히 명소를 나열한 여행기가 아니라 역사와  각 나라간의 관계들을 담고 있어요. 필요한 자료만 압축적으로 아주 건조하게 담은 거죠. 결국 『열하일기』와 『왕오천축국전』은 여행기의 극단적인 두 사례를 보여준 책 같아요.


달 밝은 밤에 고향길을 바라보니/ 뜬 구름은 너울너울 돌아가네.
그 편에 감히 편지 한 장 부쳐보지만/ 바람이 거세어 화답이 안 들리는구나.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고/ 남의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
일남에는 기러기마저 없으니/ 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으로 날아가리.(『혜초』)


나 김탁환, 소설중독자? 아니 책 중독자!

 

 



― 홈페이지에 보면 자신을 ‘소설중독자’라고  소개하셨어요. 전에 카이스트에서 인터뷰 할 때도 독서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잖아요. 학생들에게 『발자크평전』을 읽히는  교수님. 어떻게 보면 재미없을 것 같기도 한데요.
― (웃음) 만만치 않은 수업이죠. 엄청나게 읽히거든요. 저한테 책은 생활이에요. 글을 쓰는 것도 직업이고 습관이고, 독서도 그래요. 책은 계속 읽어요. 수업은 요즘 읽고 있는 책을 중심으로 구성하려고 해요. 그것들 중 선별해서 학생들에게 읽히는데, 한 학기 단위로  주제를 정해서 읽혀요. 제가 좋아했던 책들을 테마별로 정리한다는 의미도 있고요.

― 이제 곧 개강인데 이번 학기에도 책읽기가 포함되나요?
― 그렇죠. 이번엔 ‘디지털  서사학 특강’이라는 과목을 가르치는데, 소제가  ‘기억과 인터뷰’예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터뷰집만 읽으려고 해요. 13권 정도 골라서요. 또 부모님을 직접 인터뷰하는 과제를 시켜보려고  해요. 한 한기에 13권의 책을  읽히고 두 번의 과제를 수행하게 하는 거니까 만만치는  않죠. 하지만 만족도는 높아요. 적어도  인터뷰라는 장르에 대해서 온전히 알게 되니까요. 기말 리포트는 ‘2008년 카이스트의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진행할 건데, 카이스트 지도를 웹에 띄워서 공간을 클릭하면 인터뷰 내용이 죽 뜨는식으로 만들려고 해요. 그렇게 해서 카이스트 구성원들한테 전부 이메일로 띄우는 거죠.  흔히 ‘기억’을 ‘아카이빙’이라 하죠. 어떤 한순간의 사건을 모으는 방법인데, 그런 점에서 인터뷰는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요. 가장 객관적인 장르이기도 하고, 모든 예술의  기반이죠. 전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골방에서 생각만 하면 단편작가 밖에 못되죠. 그래서 ‘퍼슨웹’도 하고 있는 거구요.

인터뷰, 작가에겐 반드시 필요한 체험

 


― 인터뷰라면 선생님의 글쓰기를 지탱하는 기반인 것 같아요. 답사의 상당 부분이 현지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지잖아요.
― 인터뷰는 저 같은  소설가뿐 아니라 모든 학자들에게 필요한  장르에요. 제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구요.  저는 구술역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요.  대학원 때 답사를 참 많이 다녔어요. 강화도나 충청도 산골을  다니면서 이야기나 설화를 발췌했어요. 전기조차 안 들어오는 마을에 가서 할아버지들하고 술을  나눠 마시면서 이야기를 듣는 거죠. 그러면 “가방 끈 짧은 내가 무슨…”이라면서 말끝을 흐리세요. 그땐 제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요. 그러면 대화가 이어져요. 전해 내려오는  설화, 사연 같은 걸 듣는 거죠.  아주 재미있어요. 예컨대 이순신에 대해 쓴다면 자료야 찾을 수 있지만, 이순신이 살던  마을에서 내려오는 어떤 전설이 있거든요. 누군가 꼭 기록해야 하는 얘기죠. 그래서 구술기록이나  인터뷰가 중요한 거구요. 그런 걸 소설에 넣으면 이야기가 아주 재미있어져요.

― 추천해주실 만한 인터뷰집이 있다면요.
― 아주 많은데 최근에 읽은 것 중에는 『문더스트』.  달나라에 다녀온 사람 중 살아있는 이들을 인터뷰한 거예요. 우주에 갔다 와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추적한 건데 아주 재미있어요. 한 사람은 우주에 다녀온 경험을 그림으로 그려서 먹고살아요. 또 우주라면  치를 떠는 사람도 있고 참 다양해요. 7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인데 재미있어요. 또  『괴테와의 대화』라는 책도 좋죠. 사람들이 괴테의 작품은 잘 안 읽어도 괴테와의 대화는 읽잖아요.

― 좋아하는 작가 이야기도 해보고 싶은데요.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작가들을 꼽는다면 누가 있을까요.
― 개인적으로 비슷한 작법을 추구하는 작가로는 오르한 파묵이에요. 『이스탄불』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어요. 고향에 대해 쓴 책인데, 우리 작가들과는 아주 많은 점이 달라요. 예컨대 일반 에세이라면 “촉촉히 젖은 고향의  눈망울…” 이런 감성적인 문장이 나올 텐데 『이스탄불』은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자료조사를 하거든요. 고티에는 이스탄불을 이렇게 말했고, 플로베르는 이렇게 말했고, 이런 식으로 많은 자료들을 첨부해요. 여기다 개인사를 더하죠. 그렇게 이론과 경험을 잘 배합해야  이야기가 물렁해지지 않고 탄탄해져요.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이나 『검은책』을 보면 제가  쓰고 있는 작업과 공통점을 찾을 때가 많아요.
그때마다 영감을 주는 작가가 달라지는데,  한동안은 스티븐 킹이 너무 좋았어요.  엄청나게 저돌적인 작가죠.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공포.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는 상황들을  다 써요. 예컨대 딸이 둘 있는데, 납치되어 죽는다면? 그리고 납치범에게 전화를 받는다면? 얼마나 무섭겠어요. 그런 걸 이야기로 써볼까 하면 웬만한 건  킹이 다 써버렸어요. (웃음) 또 작가인 나를 독자가 납치해서, 이거 잘못됐으니까  다시 써! 이렇게 말한다면? 그건 편집자에 대한 야유나 공포거든요. 그게 바로 『미저리』죠.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다 써놓은 거예요. 아주 센 작가에요. 매력이 넘쳐요.전에는 폴 오스터 소설을 좋아했어요. 이야기의 진짜 힘을 보여주는 작가죠. 묘사는 없고 끊임없이 구라만 가득하죠. 사실 다 짜놓고 시작하는 건데 읽다 보면 구성이 딱딱 맞아요.  책 읽는걸 즐기다 보니 많은 작가들에게 공감하고 또 떠나보내고 그러기를 반복해요.

― 구상 중인 소설이 있다면 살짝 예고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 이야기 하면 꼭 그거 언제 나오느냐 이런 메일이  와서… (웃음) 스타일이 다른 쪽으로 항상 튀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과는 다른 작품으로요. 지금은 디지털 문명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어요. 그런 이야기에도 관심이 있고요. 저는 두 가지가 충족되면 쓰는 것 같아요.
한 번도 조망되지 않았던 것이고,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방식으로 쓸 수 있다면. 지금  갖고 있는 이야기가 5,6개 정도 되니 그 중에서 쓰게 될 것 같아요.

여행이란 마을을 떠나 마을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마을을 벗어나지  않으면 다음 마을로 들어갈 수 없지요. 하나의 문장을 마치지 않고는 다음 문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여행기처럼, 저는 떠나온 마을과 닿은 마을의 이름과  거리와 위치를 나란히 글머리에 기록하기를  즐깁니다. 절친한 벗이 한 집에 살 듯, 여행자로 인해 두 마을은 서로를 의지하며 한  문장에 들어갑니다. 여행자가 여행자라는 사실을 이처럼  간단하게 증명하는 방법이 또  있을까요.(『혜초』)

기사게재: <기획회의> 231호 만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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