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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와 생크림을 듬뿍 넣은 카페라떼 크림을 휘휘 젓고 있던 어느 날 저녁. 다이어트를 생각하면 마시는 것이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혀끝에 감기는 달콤한 크림 맛을 거부할 표독스런 의지가 나에겐, 없다.


시계를 올려다보니 벌써 저녁 9시 40분.


이 시간이 되면 늘 내일 아침 기사를 매듭짓지 못한 것에 대한 조바심과 책상 한 쪽에 산처럼 쌓인 책들을 읽고 싶은 충동이 나를 괴롭힌다. 기사를 쓴 책이건, 쓰지 않은 책이건 나에게 있어 책이란 언제나 읽고 싶은 ‘탐욕’의 대상이다.


“에라 모르겠다”


한글 2004 화면을 내려놓고 컴퓨터 바탕화면에 떠 있는 ‘KBS 콩’을 눌러 로그인 한다.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김영하의 문화포커스’나 들으며 한 시간 쉬어보자는 불한당 같은 심보가 동한 것이다.



“책 읽다 눈 멀 뻔한 그녀의 터질 듯한 아름다움”


오호라 횡재. 재담이 화려한 화가 김점선 씨가 출연한단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듣자니 박수쳐 동조하고 싶은 ‘말’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내 시력이 나빠진 이유는 3분의 2가 소설 때문이다. 눈을 작게 떠서라도 글자가 보이면 읽었고 앞이 캄캄해지면 눈물이 비 오듯 쏟아 졌다.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 앞이 캄캄해 졌던 때가 있었다. 책상을 더듬더듬해 한 숨 깊게 자고 나면 그제야 앞이 보였다.”


책을 읽다 눈이 멀 정도의 고통을 느꼈다는 그녀의 탐욕이 어찌나 아름답게 느껴지던지 누워 있던 몸을 곧추 세워 앉아 볼륨을 높였다. 그리고, 김점선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의 고장 난 ‘눈의 역사’를 꺼내보고 싶어졌다.


전작주의식 책읽기를 좋아하는 나는 한 작가를 발견하면 그의 모든 작품을 찾아 읽어야 분이 풀리는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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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욕심이 유달리 심해서 직장 때문에 분가해 살고 있는 동생의 빈 방을 노려 그 안을 ‘책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내 방, 지하실, 옥상의 빈 공간 모두를 책으로 메워 부모님의 화를 돋웠다.


“제발! 안보는 건 좀 버려!”


그러나 잡지 하나도 못 버리는 성격인 내가 단행본을 버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집으로 들고 들어오는 책은 늘어만 가는데 버려지는 책은 전혀 없으니 사방이 책이다.


‘중증’에 달하는 책 욕심은 안구 건조증, 알레르기성 결막염을 가져왔다.

0.3 정도는 유지했던 시력은 대학 시절 무라카미 하루키를 탐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술도 못 마시고 특별한 취미도 없던 나의 유일한 취미는 독서와 영화관람이었다.



방학이 되면 친구들은 어학연수다 해외여행이다 짐을 꾸리기 바빴지만 나는 출퇴근 하는 직장인처럼 학교 도서관을 드나드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토익이나 자격증 시험 준비를 위해서가 아닌, 오직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


잠도 자지 않고 책을 읽다보니 나중엔 눈이 잘 감기지 않을 정도로 건조해지기 시작했다. 소설을 읽느라 밤을 새우고 친구 모임에 나간 어느 날. 안구 건조증으로 인한 나의 눈 피로는 극에 달해있었다. 간간이 안약을 넣어봤지만 실내인지라 건조증은 더해만 갔다.



급기야 화장실로 달려가 렌즈를 빼려던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렌즈가 눈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자다가 눈 뒤로 렌즈가 넘어간 사람도 있다던데....”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라 덜컥 겁이 났다.


가까스로 가까운 안과로 달려가 렌즈를 떼 낼 수 있었지만 안구를 너무 많이 건드린 뒤라 눈은 토끼처럼 붉게 충혈 돼 있었다. 의사는 안구 건조증이 심하니 렌즈 말고 안경을 착용하라고 권유했다. 책도 읽지 말고 눈을 충분히 쉬게 하라는 경고까지 덧붙였다.



그러나 나는 의사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의사의 경고를 무시한 채 밤샘 책읽기를 감행한 결과 1년 후에는 알레르기성 결막염이라는 병까지 얻게 됐다. 나는 지금도 외출할 때면 반드시 안약을 챙겨 나간다. 언제 어느 때 건조해지고 피로해질지 모를 눈을 위해, 안약은 필수다.
 
- 출판잡지 <기획회의> 연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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