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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는 글쓰기”

<기획회의> 227호 만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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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의 글은 명쾌하다. 주장이 또렷할 뿐 아니라 쉽게 풀어낸다. ‘고전평론가’라는 묵직한 이름을 달고 다니나, 글만큼은 대중의 눈높이를 지향한다. 글만큼이나 그의 성격 또한 분명하다. 고미숙은 최근 펴낸 신작 『이 영화를 보라』(그린비,  2008)에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성격 ―좀 거칠다. 에둘러 가는 걸 아주 싫어한다. 그런데도 다행히! 인복이 많다.
좋아하는 사자성어― 단도직입, 거두절미, 절차탁마, 종횡무진”

그야말로 책도 글도 쾌도난마快刀亂麻형이다. 인문학 연구의 중심에 서 있는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이끌고 있는 그녀의 삶은 공부와 글쓰기로 이루어져 있다. 작년에 펴낸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그린비, 2007)를  통해 그는 자신이 ‘공부의 달인’임을  천명했다. 한때 박지원에 빠져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 2003)을 썼고, 지금은 루쉰魯迅에 미쳐 있다. 박지원과  루쉰은 고미숙에게 ‘실천하는 글쓰기’를 알게  했다. 입으로 뱉고, 손으로 써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 삶으로 이행되는  글쓰기였다. 에둘러 가는 걸 아주 싫어하는 고미숙은 박지원과 루쉰에게 배운 ‘실천하는 글쓰기’를 살고 있다.

그녀의 거주 공간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바로 이런 의지를 확인케 하는 결과물이다. 학문과 생활이 일치하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공부만 하는 연구실이 아니라 생활을 함께하는 삶의 공간이다. ‘좋은 앎과 좋은  삶을 일치시키는 연구자들의 생활공동체’를 모토로 청소년부터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생활하고 있다. 고미숙을 비롯해 고병권, 이진경 등이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든든한 동지이다. 또 서로가 스승이자 학생이기를 자처한다.

취재차 찾은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젊은 분위기로 가득했다. 남산  아래에 자리한 건물 안에는 공부방과 탁구장, 그리고 커피향이 물씬 나는 카페, 식당 등이 들어서 있었다.

고미숙은 단정한 셔츠 차림으로 취재진을 북카페로 안내했다. 클래식과 팝, 재즈음악이 흘러나오는 분위기 좋은 장소였다. 신간 『이 영화를 보라』로  시작된 인터뷰는 강단 인문학을 향한 비판과 공부하는 즐거움,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 공부, 앞으로의 계획들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김민영(이하 김) 책과 가까우신 분이  영화 이야기라니 좀 의외였어요. 『이 영화를 보라』는 어떤 계기로 쓰게 되셨어요?

고미숙(이하 고) 제가 주로 공부하는 게 ‘고전’하고 ‘근대’인데요. 고전을 공부할 때는 현대가 배경이 되고, 현대에 집중할 때는 고전이 배경이 돼요. 고전은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근대는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말해주죠. 저는 100년 전  신문이나 문학 텍스트도 자료로 써요. 그러다가 영화에 관심을 두게 됐어요. 2000년 이후 한국 영화의 대중 접속도가 높아졌잖아요. 그러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 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는지 궁금해졌죠. 우리 시대의 삶과 인식을  이해하는 좋은 텍스트라고 생각했어요. 이번  책에서 다룬 여섯 편의 한국 영화를 통해  근대의 풍경과 서사를 스케치해봤어요. 영화 속에  담긴, 100년간 한국인들의 일상과 무의식을 지배해온 핵심 기제들을 꺼내고 싶었습니다.


서문에서 “나는 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다”고 선언하셨어요. 책과 영화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영화를 자주 보지 않는 이유는 간단해요.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거, 음… 예를 든다면 책이나 친구? 그런 것들이 늘 주변에 가득하니 영화에 빠지질 않았죠. 그동안 영화의 가치가 이미지로만 평가받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어요. 제가 관심 있는 건 감독의 무의식이에요. 그들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것들이 영상으로 표출되는 거거든요. 결국 저에게 의미 있는 것은 서사예요. 2007년에 성공을  거둔 영화들의 공통점은 서사가 재미있다는  것인데요. 관객들을 움직인 이유도 그것 때문이라고 봐요.

그는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본 영화 <괴물>의  흥행요소를 이번 책에서 색다르게 분석했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두 가지 점에서 아주 특별하다. 첫째, 초대형 블록버스터에 멜로가 없다는 점. 둘째, 임상의학, 더 구체적으로는 위생권력의  정치적 실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했다는 점. 먼저, 멜로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었던 감독의 뚝심은 실로 대단했다. 그리고 그게 가능했던 건 후자만으로도 충분히 영화적 서사를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일 터. 영화 <괴물>의 진정한 ‘괴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이 영화를 보라』, 13쪽)


표제에 ‘인문학과 영화, 그 어울림과 맞섬’이라는 부제가 있습니다. 영화를  다룬 책이지만, 인문학에 대한 관심의 끈이 엿보이는데요. 현 시대의 인문학, 어떻게 보십니까?

강단의 인문학과 대중 속의 인문학이 소통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죠. 예컨대 출판의 경우 독자와 소통해야 하므로, 어렵게 이야기해서는 안 돼요. 그런데 강단의 인문학은  여전히 몸을 낮추지 않습니다. 요즘 인문서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 대부분이 심리서예요. 그런 책들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심정이 듭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 마음을 모르면, 얼마나 답답하면 저런 책을 찾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마음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아요. 끊임없이 움직이죠. 중요한 건 나를 아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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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 인문학, ‘전문성’과 ‘지루함’을 혼동

대중과 강단의 거리는 여전히 멀죠. 교수들의 글이 안 읽히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사실, ‘어렵다’는 말은 ‘재미없다’는 말과 같다고 볼 수 있어요. 강단의 글쓰기를 하는 분들은 전문성과 지루함을 혼동합니다. 무겁다고 깊이가 있는 게 아니에요.  깊이와 성찰도 얼마든지 쉽게 소통할 수 있다고 봐요. 만약 인문학을 한다는 이유로 무겁게 접근하려 한다면 그건 ‘소통의 무능력’이죠. 그런 글쓰기 방식이 나오는 것은 대학의 공부 방식 때문이에요. 논문이나 학술적 글쓰기를 해야만 전문성이 있다고 착각하는 거죠. 인문학은 세상의 삶과 소통하기 위한 학문이에요. 그런데 대중과 통하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소통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 기반을 스스로 와해시키는 거예요.


그럼에도, 여전히 강단의 지식인들이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혼란의 시대를 사는 지식인, 어떤 의무를 해야 할까요?

지식인의 임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라고 생각해요. 강단에서 내려와 그 스스로가 대중이 되어야죠. 말이나 글만이 아닌, 자신의 삶을 바꾸고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대중들에게 ‘이렇게 변해라’ ‘이런 삶을 살아라’ 말하기보다는 그들 스스로가 변화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거리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죠. 학문도 얼마든지 퍼포먼스가 가능하거든요. 얼마 전 촛불집회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아주  특이한 체험이었어요. 밤 12시가 다된 시간에, 정말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에서 내 목소리를 낸다는 것,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었어요. 연극이나 콘서트처럼 얼마든지 지식을  가지고 축제를 벌일 수 있어요. 생각의 틀을 깨고 거리로 나가야죠. 그래야 대중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강단 안에서만이 아닌, 대중들과 직접 만나는 학문이야말로 살아 있는 학문이죠. 대중과 만나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것은 홀로 하는 공부 이상으로 중요할 수 있어요.


글이 곧 삶… 연암에게서 배운 것

작년에 내신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를 비롯해 대다수의 책들이 명쾌한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줍니다. 자신만의 글쓰기 원칙이 있습니까?

지금 나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 가장 고민하는 문제를 갖고 글을 써요. 나의 자유와 행복과 관련한 문제에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습니다.  글은 그런 고민의 결과물이에요. 저를 둘러싼 공동체 모두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분석하고 공부합니다. 내가  고민하지 않는 문제를 글감으로 잡으면 재미를 못 느껴요. 그럴 땐 글발이 서질 않죠.  몰두하는 만큼 힘을 받거든요.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문제를 다룬다? 그러면 정말 지루해지겠죠.

뭐랄까,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것, 그런 걸 찾아가다  보면 존재가 깨지는 느낌을 받아요. 그러다 보면 사람들과 소통하는 길이 열리고요. 결국 독자와 만나는 접점이죠. 굳이 독자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써야겠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그렇게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문제들을 글로 써내는 작업에 재미를 느낄 뿐이죠. 어려운 글쓰기만 고수하는 학자들은,  자신의 삶과 몸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문제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글은 삶과 소통하지 못합니다. 괴리가 생기죠.

그는 남들이 하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생활을 ‘포기’하고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심정을 책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 조상들의 ‘두레’와 비슷해 보인다.

“돈이 없으면 어쩌냐고? 절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증여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다른 활동을 베풀면 된다. 요리나 청소, 간식준비 등 몸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것, 세미나 게릴라가 되는 것,  사람들과 능동적으로 접속하는 것, 환하게 웃는 것, 즐겁게 수다 떠는 것 등등 이 모든 것이 증여의 일종이다.”(『아무도 기획하지 않는 자유』, 휴머니스트, 2004)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소통하는 글쓰기를 실천하는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거주하시는 모습을 보니 연암 박지원이 떠오릅니다. 연암의 삶에서 많은 영향을 받으셨죠?

그렇죠. 박지원은 저에게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열하일기』를 읽으면서 삶과  글 사이의 단절이 없다는 사실을 크게 깨달았어요. 경계가 없는 거죠. 삶이 곧 글이고, 글이 곧 삶입니다.

한 권의 책을 쓸 때마다 하나의 벽이 무너지는 과정을 체험합니다. 그걸 통과하고 넘어서면서 또 하나의 세상을 만나는 거죠. 내가 쓴 글을 통해 누군가를 변화시켜야겠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이미 쓰는 동안 나는 큰 걸 얻고, 나아가니까요. 독자들이 얻는  것, 느끼는 것은 철저히 그들의 몫이겠죠. 중요한 건 글을 통해  저마다 다른 사유의 방식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이런 삶도 있구나, 라는 걸 깨닫고 인정하는 거죠.


“연암 박지원은 천재다. 내 지적 범위 내에선 그 견줄 바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다. 그런데도 그는 나를 매혹시켰다. 다름아닌  그의 유머 때문이다. ‘유머’는 기본적으로 따뜻한 가슴에서 나온다. 말하자면 그는 천재인데도 가슴이 따뜻한 천지간에 보기 드문 사람인 것이다.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동서고금의 천재 가운데 그처럼 유머를 잘 구사한 인물은 없으리라고.”(『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그린비, 2003)


고전평론과의 만남, 우연 그리고 필연

독문학을 하다가 고전평론으로 전공을 바꾼  게 김홍규 교수의 강의  때문이었다고 들었어요.

고전과의 만남은 정말 우연이었어요. 김홍규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충격에  빠졌죠. 하고 싶었던 걸 발견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계기가 제 인생을 바꾼 거죠. 대학을  졸업하고선 출판사에 들어갔어요. 출판사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책을 마음대로 못 보는 거예요. 책 읽는 게 내 삶의 얼마나 큰 기쁨인데. 그래서 그냥 1년  만에 그만뒀어요.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었어요. (웃음)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지금까지 온 거예요.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스파크가 일어나는 책이  있어요. 『동의보감』이 그랬고, 지금 공부 중인 루쉰이 그랬어요.

공부의 근본은 우주 사이의 간격을 없애는 거예요. 처음부터 고전평론을 했던 건  아니지만, 지금 제가 『동의보감』을 통해 의학에  눈을 뜬 것처럼 전공 구분은  무의미한 것 같아요.
언제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될지 모르고, 그런 우연들을  통해 필연처럼 그 학문과 만나는 과정이 바로 공부의 가장 큰 참맛이 아닐까 해요.


여전히 공부하고 싶은 게 많죠? 매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시는데.

그럼요. 매일 해도 지치지 않는 게 공부예요. 가장 즐겁고, 가장 보람된 것, 가장 재미있는 게 공부죠. 다음 생에서도 가장 하고  싶은 걸 물으면 전 공부라고 답할 거예요.  책 속에 파묻혀 건져올린 것들을 세상으로 짊어지고  나왔던 루쉰처럼 공부를 놓을 수가  없어요.

공부란 세상을 향해 질문의 그물망을  던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질문의 크기가  곧 내 삶의 크기를 결정하죠. 그러니 끊임없이 공부해야 해요. 정체된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 공부를 놓아선 안 돼요.



공부하면서 어떤 행복감을 느끼나요?

공부는 삶의 리듬감을 높여줘요. 마치 연애처럼. 몸 안의 잠재력이 충만해져서 삶을 업그레이드시키죠. 그게 꼭 행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삶에 생동감을 주는 건 분명해요.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열정이 줄어들곤 하는데, 무엇이든 강렬해져야  할 수 있는 게 많아져요. 그런 점에서 공부는 지속적으로 하면 할수록 삶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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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욕망과 가족 코드에서 벗어나야 ‘행복’

“우리의 공동체는 거대한 토지를 거점으로 하여 마을을 구성하는 정착적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거점의 유연한 변이가 가능하고, 영토표지와 개별주체가 아니라 활동과 네트워크를 통해 그 존재를 표현한다. 명실상부한 ‘노마디즘 코뮌’인 것이다.

우리는 자본이 없다! 대신 인적,  지적 네트워크가 풍부하다. 고정된 직업이  없거나 있어도 유연성이 크다. 또 본의 아니게(?)  독신으로 사는 경우도 많다.  이런 특성이야말로 유목적 공동체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조건이다. 활동성과 기동력이 높다는 점이야말로 유목민의 특징이 아닌가.”(『아무도 기획하지 않는 자유』)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구성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겉으로 보기엔 세상이 말하는 성공, 이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것 같은데요.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능력이 없는 거예요. (웃음) 재테크나 부동산 이런 거 아무나 못해요. 1-2년 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많이들 실패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돈을 모은다고 해서 행복해질까요. 그런 것에 매달리는 사람들도 결코 그런 게 삶에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을 거예요. 다른 길이 없으니까 그걸로 승부를 거는 것뿐이죠.  가만히 앉아 상상을 해본다고 쳐요. 좋은 아파트에, 화려한 인테리어, 값비싼 차를 갖게  됐다, 그게 행복감을 줄까요? 절대 그렇지 않죠. 그런데도 왜 그렇게 물질적 욕망에 매달릴까,  결국 누군가와 비교하려는 욕구 때문이죠. 돈을 모아 돈을 쓰면서, 자신을 떠받들어주는  사람들을 부리고 싶은 거죠. 그런 사회적 대접을 받고 싶은 거예요. 사실 그건 아주 변태적인 욕구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외로움을 참지 못해요. 모든 걸 가족 중심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주변에  사람이 많아야 행복해진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걸 봐요. ‘수유+너머’에 있는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코드에 집착하지 않아요. 얼마든지 다른 욕망을 생성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결국 가족이 최후의 보루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요.


말씀을 듣다 보니 사고의 유연함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착한다는 건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일 테죠.

그렇죠. 유연해지지 못하면, 자유를 얻지 못해요. 모든  일을 유연하게 생각해야 해요. 그러면 많은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얼마든지  부부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봐요. 반드시 어때야 한다, 이런 정해진 관계는 없죠. 서로에게 집착하다 보면, 그 관계에 모든 걸 걸게 돼요. 그게 깨지면 삶도 망가진다는 생각을 갖게 될 수밖에 없어요. 그건 자신은  물론 상대까지 망치는 강박입니다.

‘수유+너머’가 지향하는 공동체적 네트워크는 바로 그런 한계를 극복하는 공간이죠. 가족 전체가 머물 수도 있고, 아이들만 올 수도 있고, 부부가 따로 다닐 수도 있죠. 아이들도 엄마아빠 말고 다른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부모에 집착하지 않게 돼요. 스스로 독립하고, 자유를 찾게 되는 거죠.



연구공간의 문을 열 때와 지금을 비교할 때, 가장 큰 변화는 뭔가요?

경계가 넓어졌죠. 석박사들 중에 제도권 학문을 벗어나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있어요. 점점 늘고 있죠. 자본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사람들도 많아요. 연령층도 다양하고 하는 일도 다양해요. 관심 분야도 그렇고요. 사진, 영화하는 친구들도 있고, 이주노동자들도 있죠. 점점 경계가 허물어지는 느낌이에요.


당분간 집중하실 공부가 궁금합니다.

루쉰하고 『동의보감』이에요. 루쉰은 글과 삶이 이런  식으로도 소통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요. 『동의보감』은 볼 때마다 산과 바다를 만나는 것 같아요. 집필  중인 책 『호모 에로스』를 마무리하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인터뷰 후 우리는 ‘수유+너머’의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안엔 중고등학생,  대학생, 청년 등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고미숙은 1,800원짜리 맛있는 점심을 샀다. 스스로 먹을 만큼 가져다 먹는 뷔페 형이었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전부 이웃이나 구성원들이 가져다준, 유기농으로 키운 야채라고 했다. 식사를 마친 학생들은 자신이 먹은 그릇을  깨끗하게 설거지했다. 음식을 남기는 사람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남은 음식물은 조각난 식빵으로 닦아 마무리했다. 물론, 그 식빵 역시 맛있게 먹었다.  그 모습들이 무척 역동적으로 느껴졌다. 분업이란 이름으로 우리는 진짜 삶에서 얼마나 멀어졌던가.


고미숙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한 아이는 면담을 청해왔다. 최근 안고 있는 문제가 잘 안 풀린다며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했다. 흔쾌히 청을 거두는 고미숙은 아이만큼이나 젊어 보였다.
그들 사이엔 어떤 경계도 없었다. 우리는 ‘노마디즘 코뮌’을 목격했다.

“우리에게는 좀더 큰 야심(!)이 있다. 지금까지 연구실은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지식생산이라는 모토가 전부였다. 물론 그건 앞으로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을 발판 삼아 좀더 드넓은 경계로 나아가고 싶다. 앎이 곧 혁명이  되고, 일상이 곧 구도가 되는, 다시 말해 ‘혁명과 구도가 일치하는’ 야생의 대지로 나아가고 싶다.”(『아무도 기획하지 않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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