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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은 출판 불황에도 끄떡없는 강력한 브랜드다. 장편소설 『즐거운 나의 집』에 이어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네가 어떤…』)으로 연타석을 치며, 공지영 파워를 다시 입증하고 있다. 『네가 어떤…』은 출간 3개월 만에 10만 부가 팔렸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우행시』) 이후 ‘공지영’이란 브랜드는 기존 문학시장에서 드라마, 영화, 스타를 아우르는 엔터테인먼트 시장까지 영역이 확장됐다. 여기엔 동명의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히트 또한 큰 몫을 했다.

공지영을 지지하는 독자들은 그의 솔직함과 진정성을 선호 요인으로 지목한다. 취재현장에서 만난 고1 남학생 윤태호(16) 군은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서슴없이 공지영을 꼽았다. 좋아하는 이유는 역시 ‘진정성’이었다. “공지영 작가의 문학행사엔 빠짐없이 찾아다닌다”는 윤 군은 “독자를 흔드는 힘이 있다”고 했다. 윤 군의 책장 한켠엔 공지영의 모든 책이 나란히 꽂혀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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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공지영은 평단과 문학상보다는 독자와 가까운 작가다. 독자들은 공지영과 이야기하길 원하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며, 자신의 이야기도 들려주길 원한다. 공지영 책에 올라온 서평 상당수가 책에 대한 단순 감상문을 넘어 독자들의 사연을 담고 있다는 것은 이에 대한 하나의 증거다. 독자들의 사랑은 작가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다. 작가로서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직접 만난 공지영은 그야말로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프릴 달린 스커트와 플라워 코사지를 달고 나타났다. “너무 과한가요?”라고 웃는 그녀는 소설처럼 솔직했다. 데뷔 이후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그녀와의 달콤한 인터뷰.

문학상보다 독자와 가까운 작가

김민영(이하 김) 이렇게 빛 좋은 날은 뭐하고 보내세요? 글쓰기 싫어질 것 같은데.

공지영(이하 공)
요즘은 인터뷰가 많았어요. 밖에 일이 있는 날은 금세 하루가 가요. 집이 분당이니까 오가다보면 그렇게 돼요. 그렇지 않을 땐 집에서 뒹굴면서 책 보거나 인터넷을 해요. 장에도 다녀오고, 평일엔 주로 미사 드리러 성당에 가요. 개인적으론 주일보다 평일미사가 더 좋아요. 조용하고.

『네가 어떤…』 반응이 너무 좋아요. 『즐거운 나의 집』에 이어 연타석 홈런인 셈인데 기분 좋으시죠.

그럼요. 근데 솔직히 이 책은 의외였어요. 『즐거운 나의 집』도 마찬가진데. 책 쓸 때마다 출판사에 말해요. “이번 책은 안 나갈 거니까 광고도 많이 하지 말고, 기대도 하지 마세요.” 이번 책도 그랬거든요.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책 중 가장 반응이 빨랐던 것 같아요. 놀랐죠.


에세이 형식이지만,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도 있어요. 지금까지 ‘공지영’이라는 브랜드로서는 좀 의외였어요.

사실 이 책이 부활한 건 한 독자 때문인데요. 언젠가 교보문고 사인회에 갔는데 어떤 멀끔한 청년이 와서 그래요. “선생님 왜 그 글은 책으로 안 내세요?” 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기억하고 있더라구요. 전부 모아뒀다면서, 책으로 내달라고. 저조차 잊고 있던 글이었는데. 잘못하면 세상 빛을 보지 못할 뻔했죠.


독자들 반응을 보면 어떠세요? 온라인 서평을 보면 단순히 책을 읽은 감상이 아니라, 마치 모노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자기 얘기를 꺼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런 표현이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많이 씁쓸해요. 얼마나 좌표가 없으면 이렇게 20대가 열광할까. 책이 잘 나가는 건 좋지만, 내 아이들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제목만 보고 샀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요즘 책들 보면 부동산 경매에 재테크, 그런 책들이 많이 팔리잖아요. 미장원에서 파마할 때 여성지를 ‘탐구’하는데, 빼라 꿰매라 찢어라 온통 성형 이야기뿐이고, 너무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어요. 네 종아리는 너무 두껍다, 살도 빼라, 턱도 깎아야 한다, 그런 말투성이에요. 20대에 억대 부자가 되는 법, 그런 책들을 보면 소름이 끼쳐요. 좌절감을 주는 얘기들뿐이죠. 그런 계기로 글을 쓰게 된 거예요. 딸 또래의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들이었죠.

자신의 감정들을 토해낸 독자평이 많은데 어떤 요인 때문일까요?

사인회하면서 되게 놀랐어요. 20대 초중반의 아이들이 “저 요즘 너무 힘들어요” 하거든요. 책 내용이 사실 별로 특별한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얼마나 읽을거리가 없으면 이럴까 싶어요. 서점에 나가면 온통 자기계발서뿐이에요. 딸이 이런 말을 해요.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들은 한 명도 없어”라고요.

이번 산문집은 책에 대한 책, 책 읽어주는 엄마 같아요. 그냥 응원해줄 것 같은 책, 자유를 줄 것 같은 엄마 같은 느낌이랄까요?

주변에 아이 키우는 사람이 저밖에 없어요. 모두들 해외에 보냈어요. 저는 어릴 때 해외로 보내는 것은 반대에요. 옆에 있을 때 같이 밥이라도 먹는 게 좋은 추억일 것 같아요. 솔직히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꽤 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공부 못하는 게 이해가 안 된 적도 있었어요.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는 걸 알게 됐어요. 딸애 때문에 언젠가 학교에 불려갔어요. 선생님이 왜 아이를 학원에 안 보내느냐고 해요. 너무 놀랐어요. 그래서 이렇게 답했죠. “선생님, 저 공부 잘했는데 하나도 안 행복하거든요.” 공부 잘하는 친구들 보면 다 잘 살지는 않아요. 저는 아이들 행복하게 키우고 싶어요. 공부만으로 아이 야단치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도 이 생각엔 변화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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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엄마는 드물 텐데요. 독서광 취재하다 만난 어떤 학생의 엄마는 책을 읽지 못하게 한다더군요.

공부하라고요? 이해가 안 가요. 안 읽어서 걱정인데… 너무 복이 많은 거죠. (웃음)


『즐거운 나의 집』을 읽고 개인적으로 많이 울었어요. 솔직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죠. 말을 걸어주는 작가, 정말 따뜻한 사람이라는 느낌이었어요.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영영 행복은 없어”라는 대사는 잊지 못할 명대사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두렵지는 않으세요?

처음 습작할 때는 되게 싫었어요. 첫 소설이 대학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소감에 “속 치맛자락을 들킨 것 같다”라는 말을 했어요. 『즐거운 나의 집』 쓰면서 작가라는 것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인 것 같아요. 전에는 늘 소설가인 걸 회의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즐거운 나의 집』을 쓰면서, 나는 글을 쓰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 내게 주어진 고통도 그래서 겪어야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연재 마치면서 “남과 달라서 고통받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라고 썼는데,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해요. 아이들은 속수무책이죠. 그 아이들을 위해서 쓰고 싶었어요. 내 이야기를 드러냄으로써, 어떤 아이들이 위로받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그런 생각으로 낸 책이었죠.

『즐거운 나의 집』 연재 막바지 170통의 독자후기

탈고 했을 때 느낌은 어땠나요?

신문연재였기 때문에 피드백이 많았어요. 제일 감동적이었던 건, 끝나기 일주일 전에 담당기자가 “황석영 선생님께 부탁드려서 소감을 적고 책에 옮기면 어떻겠냐”고 해서 제가 이런 제안을 했어요. “이 책은 명사가 아니라 독자들의 소감을 싣고 싶다, 이메일로 후기를 공모해보자” 그랬어요. 10편이어도 좋고, 몇 편이어도 좋고, 평범한 사람들이 책을 읽은 느낌을 싣고 싶었어요. 연재 끝날 무렵 모두 170통을 받았는데 정말 많이 울었어요. 작가로서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었죠. 중2부터 암수술 받은 70대 중반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에서 보내왔어요. 정말 놀라웠어요. 그게 너무 고마워서 계속 눈물이 나오더라구요. 전부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알게 됐다” 그런 글이었어요. 그때 정말 행복했어요.
 

엄마 캐릭터가 재미있어요. 전작에서 봤던 공지영이 맞나 했는데.

원래 성격은 그래요. 『즐거운 나의 집』보다 더해요. 딸이 한심스럽게 나를 쳐다볼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초등학교 동창이 30년 만에 외국에서 왔는데, “공지영이란 소설가가 있다”는 말에 “내 짝도 공지영이었는데, 동일인일 리 없다. 걔가 얼마나 왈가닥인데 앉아서 글을 쓰냐”고 했대요. 근데 그걸 확인하고, 얼마나 놀라던지. (웃음)

『즐거운 나의 집』의 엄마에 분명 자신이 투영됐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만화주인공 캐릭터 같기도 하고 지금까지 엄마들과는 달랐어요. 자식을 무조건 감싸려 하지도 않고, 오히려 뻔뻔하게 “나도 힘들어!”라고 말하는데요.

저도 고민했던 게, 왜 엄마는 모든 걸 양보해야 하고 희생해야 하나, 내 안에 그런 장점이 없는데, 그래서 못하는 건 못한다고 솔직하게 선언을 한 거예요.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에 부정적인 시선도 있는데요.

첫 소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가 계속 제 이야기라고 하는데, 아니라고 해도 안 믿으세요. 나중에는 내가 참 거짓말을 그럴 듯하게 하나 보다 생각했어요. 심지어 유인택 위원하고 대담을 하는데, “공 작가, 어렸을 때 성폭행 당했어요?” 이러는 거예요. 『우행시』를 내 이야기로 본 거죠. 너무 어이가 없어서 “제가 그렇게 감동을 드렸나요” 했어요. 『즐거운 나의 집』도 반쯤은 아니에요. 『봉순이 언니』도 그래요. 실제 봉순이 언니는 전혀 안 그래요. 다른 사람 작품을 읽으며 20년, 이걸 하면서 10년, 이렇게 보내고 나니까 대충 작가를 보면 아는데, 머리로 쓰는 것보다 가슴으로 쓰는 작가를 좋아해요. 안 그러면 남을 움직일 수 없고, 책 읽기가 지적 유희로 끝나버릴 것 같아요. 그래서 전 가슴으로 글을 쓰고 싶어요.

제가 워낙 상상을 잘하긴 해요. 완전히 그 사람에게 푹 빠져서 살아요. 한때는 배우들이 그러겠구나 싶었어요. 촬영 현장에 간 적이 있는데 정말 대단했어요. 3시간 간격을 두고 ‘레디고’ 하면 눈물을 쭉 흘리더라구요. ‘정말 저 사람들 대단하다’ 생각했어요. 그렇게 소란스러운 현장에서 어떻게 그렇게 감정을 이입하는지. 근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저도 그런 거 같아요. 그 사람의 입장이 돼서 그 사람의 삶을 다시 살아 내는 거 같아요.

요즘 출판계가 불황인데. 인기 요인이 무엇 때문인 거 같아요?

왜 저한테 그런 어려운 질문을…(웃음) 지루한 걸 되게 싫어해요. 성격도 되게 급해요. 제가 써서 재미없으면 들어내요. 독자들의 템포를 늘 염두에 두죠. 간담회에 갔더니 어느 분이 “팔린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독자를 암암리에 의식하죠?”라고 묻더라구요. 당연히 의식하죠. 프로작가고 시장에 내놓을 책을 쓰는데 어떻게 의식을 안 해요? 독자만 의식하는 건 아니지만, 분명 독자를 의식하죠. 이를테면, 대학생, 주부, 전문직 강연 때마다 들려줘야 할 내용이 달라지잖아요. 이 낯선 이야기에 어떻게 하면 귀를 기울여줄까 고민을 하는 거죠. 내용을 결정하는 건 아니고 방법을 생각하는 거죠. 장편 한 권을 쓰니까 그런 것들을 계산해요.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하면 독자들이 좋아할 거야!” 그런 건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렇게 하면 더 효과적일 거야!” 그런 걸 고민하는 거죠.

예를 들어 『우행시』에서 유정이는 절대로 울지 않는 여자로 만들었어요. 그러다 눈물을 터뜨리는 지점에 다다르죠. 이 순간 독자들이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겠다 생각해요. 내 소설의 구성상 문제이기도 하구요.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요. 또 문체의 톤도 고민하죠. 건조할 것인가, 통통 튀게 가져갈 것인가 이런 것을요. 그런 시간들이 몇 달간 진행되죠.

사회적 부채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다

올해 초 독자와의 만남 행사에서 아프리카 난민돕기단체 홍보물을 좀더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글로 만들지 못했다고 아쉬워하셨는데요. ‘읽히는 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읽힌다는 건, 이쪽의 에너지가 세야 해요. 절절해야 한다는 얘기죠. 친구랑 수많은 얘기를 해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고, 술 먹고 한마디 툭 던진 게 기억이 날 때가 있잖아요. 그땐 친구의 에너지가 그 지점에서 굉장히 셌다는 거죠. 장정일 씨가 『독서일기』에선가 한 말이 있어요. “빨리 읽히는 글은 저자의 에너지가 강렬하다는 것을 안다.” 공감하는 부분이에요. 글을 쓸 때는 체중이 빠져요. 식사도 하고 꼼짝 않고 앉아 있는데도. 내 자신이 황당할 정도로 신들린 듯이 쓸 때가 있어요. 그만큼 몰입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사실 연재를 별로 안 좋아해요. 에너지가 분산되니까. “한꺼번에 써놓고 주면 안돼?”라고 하지만, ‘마감의 힘’이라는 걸 글 쓰는 사람은 누구나 알잖아요. 최악의 상태까지 버티다 쓰게 되니까.


7년간의 공백이 있었고, 『우행시』 『즐거운 나의 집』에 이어 이번 에세이집까지 승승장구했어요. 『우행시』 전후를 비교하면 글쓰기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우행시』가 분기점이에요.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즐거운 나의 집』도 마찬가지지만. 사실 셋 중에 어느 것을 진짜 분기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세 소설 모두 강박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어요. 사회적 부채에 대한 강박이 있었는데, 젊었을 때 꿈꿨던 사회적 정의를 글로 풀어야 한다는 강박이죠. 글은 엄숙하고 진지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그 과정이 여기까지 온 거 같아요. 앞으로 더 벗어나고 싶어요. 굉장히 자유롭고 싶죠.

하다못해 의상도 변했어요.(웃음) 아직도 자기검열을 하지만, 작가로서 어떤 옷을 입어야겠다, 그런 건 생각 안 해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내가 입고 싶은 걸 입고 싶어요.
『별들의 들판』 전에 7년의 공백이 있었는데, 그 기간 중에 얻고 싶었던 것은 평화와 자유였어요.


퇴고는 어떤 방식으로 하세요. 꼼꼼한 편이세요?

제 글은 1,000번쯤 읽어요. 아예 소설을 외워요. 첫 장을 고치고 두 번째 장을 고칠 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첫 장부터 고치거든요.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누적이 되니까 전부 외우게 되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써놓고 한번에 보는 스타일은 아니고 계속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퇴고해요. 그렇게 계속 읽으면서 고쳐요. 편집자가 본 다음에도 다시 받아서 또 고치고. 그때 문장을 통째로 들어내는 일도 많아요.


글을 쓸 때 특별한 습관 같은 거 없나요? 전에 만난 김연수 작가는 만드는 인물마다 하나의 음악을 정해준다고 해요. 그 인물 작업이 끝날 때까진 계속 한 음악만 듣는 방식, 참 특이했어요.

저 같은 경우엔 어떤 인물들을 일단 떠올려요. 친구 말고, 친구의 친구 혹은 친구의 엄마 이런 식으로. 얘기는 많이 들었으나 직접 만나보지는 못한. 그래서 그들의 어떤 부분들을 합성해요.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인물이 흐트러지거나 하진 않아요. 그리고 상상력을 부여하죠. 이 사람이라면 이런 행동을 했을 거야 하는. 『우행시』를 보면 윤수가 둥그렇게 몸을 말고 빵을 먹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런 건 모두 생각해낸 거예요. 내가 이 사람이라면 어떤 행동을 할까. 그렇게 몰입해서 생각하다 보면 마치 본 듯이 쓰게 돼요. 보통 석 달 정도는 아무것도 안하고 글만 써요. 그럼 장편 하나는 나와요. 물론 그전에 수개월 동안의 구상 과정이 있고요. 막상 글 쓸 때는 이미 머릿속에 한 편의 영화가 찍혀 있다고 보시면 돼요. 안 그러면 이야기를 못 만들어요. 미리 구상이 다 끝난 상태에서 쓰죠.

또 촉박할수록 잘 써져요. 써야 되니까 할 수 없이 쓰죠.(웃음) 전에 황석영 선생님을 만났는데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프로라는 건 말야. 어쨌든 앉으면 쓰는 거야!” 아, 어쩜 그렇게 멋진 말씀을 하시는지. “역시 황석영 선생님이야” 했죠. 많은 뜻이 함축된 말 같아요.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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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하면서 바뀐 게 있으세요. 감정이나 모든 면에서 쓰지 않을 때와는 많이 달라질 것 같아요.

글쓰기는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글을 쓰고 있을 때는 매사에 굉장히 예민해져요. 풀잎 하나, 나무 색깔 등 모든 걸 몸에 입력해요. 글을 쓰지 않을 때는 무심한 풍경들이 글을 쓸 땐 유의미하게 다가오죠. 그러니 글을 쓸 때와 쓰지 않을 때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전에 끊임없이 책을 쓸 땐 이걸 몰랐어요. 7년의 공백을 겪으면서 깨달았죠. 요즘 더욱 그런 생각을 해요. 정말 난 좋은 직업을 택했다. 설사 생계에 도움이 안 되더라도 글은 꼭 써야지. 그렇게.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

글쓰기만큼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건 책인 것 같아요. 어느 글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한 책이 매일 집 앞에 쌓인다고 하신 말씀을 읽었어요.(웃음) 굉장한 독서광이시죠?

거의 중독이죠. 책 없인 못 살죠. 어릴 때부터 책을 놔본 적이 없어요. 책장을 펼 때마다 전 놀라운 경험을 해요.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고민한 사람들에게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드라마나 영화는 거의 안 봐요. 한번에 다섯 권 정도 동시에 읽어요. 거실, 침실, 화장실 곳곳에 펴놓고 읽어요.

『우행시』가 영화화되기도 했고, 시나리오나 드라마 극본 제의도 많이 받으실 것 같아요.

받긴 했죠. 그런데 책 쓰는 거랑은 많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수락을 못했어요. 시나리오나 드라마는 나 혼자 쓰는 게 아니라 시스템과 만나야 하니까 그게 쉽지 않은 거 같아요. 사실, 작가는 되게 고독한 존재에요. 책 쓸 때는 누군가 도와주는 것도, 누굴 만나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혼자 쓰는 건데 영화나 드라마는 그렇지 않아요. 워낙 다르기도 하지만 제가 매력을 못 느끼는 거 같아요. 예컨대, 아프리카에서 본 골반이 비뚤어진 아이의 모습이라든지 그건 저밖에 못 보는 거잖아요. 그걸 글로 쓰는 게 책이죠. 책은 어떤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내가 마무리할 수 있어서 좋아요.

거기서 책을 읽는 이유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가가 온전히 혼자 쓰는 거니까. 그 사람이 캐낸 ‘금맥’이 있어요. 작가가 땅 깊은 곳 여기저기에 숨겨놓은 걸 찾아가는 과정이니 얼마나 재밌어요. 독서는 그걸 찾아가는 즐거움을 주는 거 같아요. 정말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죠. 분명 좋은 영화나 드라마도 있지만 타율이 너무 낮아요. 아주 고급인 지적 유희도 책으로 표현하면 재미있지만, 영화나 드라마는 디테일하게 표현해내기 힘들어요.

토마스 만을 아주 좋아한다고 알고 있어요. 한국 작가는 누구를 좋아하세요?

음, 김유정! 정말 좋아해요. 그만의 해학과 웃음이 좋아요. 김유정 단편 읽다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와요. 대단하죠. 젊은 작가들 작품도 거의 다 사서 보긴 해요. 문학은 빼놓지 않고 보는 편이에요.

어떤 때보다 여유로워 보이세요. 행복하시죠?

지금이 제 인생 중 가장 행복한 때 같아요.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와요. 아침마다 아이들과 제 몫으로 촛불을 밝혀요. 그때 정말 행복해요. 참 신기한 게 많은 걸 가졌을 때는 이런 기도를 해본 적이 없어요. 특별한 감사는 아니고 일상에 대한 거예요, 전부. 한번은 너무 추운 새벽에 우리 집을 보니 너무 따뜻한 거예요. 그게 그렇게 감사하더라구요. 아이들 방을 열어보니 더워서 그런지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데 너무 감사했어요. “이렇게 우리 아이들 건강하고, 우리가 살 집을 주시고 따뜻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어요. 전에는 부족한 걸 세는 게 빨라서 불평만 했어요. 지금은 반대에요. 감사한 일이 너무 많은 것, 그게 가장 감사해요.

“어렸을 때, 엄마는 늘 바쁘셨다. 하루 종일 바깥일과 집안일로 쉴 틈이 없었다. 어린 마음에 엄마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이 슬프고, 세상에 나 혼자인 듯한 쓸쓸함도 들었다.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어 보니 그때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항상 비탈진 길을 오르듯 가파른 인생을 살면서 곁에 둔 자식에게 정성을 기울일 여유조차 없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쓸쓸하고 슬펐을까. 내일은 꼭 학교생활도 물어보고 대화를 나눠야지.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아 안타까우셨을 것이다.

‘사랑한다고 해서 꼭 곁에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이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리고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온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것이 말이었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오늘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showmuse, 『네가 어떤…』 독자평, 온라인서점 예스24)

기사게재: <기획회의> 225호 만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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