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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책. 답하기 어렵지만, 응하고 싶은 질문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도서 추천’만큼 신나는 일은 없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변함없이 꼽는 책이 있다. 바로 왕멍의 『나는 학생이다』(들녘, 2004). 70을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외국어 공부에 투신중인 저자 왕멍의 학구열은 탄복할 만했다. 스스로를 ‘학생’이라 칭하던 대문호의 겸손에 절로, 존경심이 들었다. 그는 학문, 즉 배움을 일컬어 이렇게 말한다.

“내게 배움은 가장 명랑한 것이며, 가장 건강한 것이다. 그리고 가장 티 없이 깨끗하고 떳떳한 것이며, 가장 진실한 것이다. 배움은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의탁처이자 암흑 속의 횃불과 같았고 나의 양식이자 병을 막아주는 백신과 같았다. 나에게 배움은 타인에 의해 결코 박탈당하지 않는 유일한 권리였다.”

60년의 역사적, 정치적 격랑을 이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을‘배움’이라 말하는 늙은 소년 왕멍. 그의 깊은 사유와 성찰을 공유하고자 『나는 학생이다』를 수십 권 구입해 선물한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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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시 왕멍을 떠올리게 된 건 『공부도둑』의 저자 장회익 선생 때문이다. 『공부도둑』은 30년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한 저자의 공부기록이다. 저자 역시, 왕멍 못지않은 학구열을 보인다. “전 우주의 학문 보물창고에 들어가서 학문의 정수만 다 골라 훔쳐내고 싶다”며 터질 듯한 학문욕심(?)을 보인다.

이 책을 주목하게 된 건 날렵한 제목과 사뭇 다른, 담담한 문투 때문이었다. 일종의 자서전을 연상케 하는 70년간의 공부기록은 그야말로 ‘소박’했다. 변함없는 학생의 모습으로, 학문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던 장회익 사상의 태동 또한 엿볼 수 있었다. 그와 연락을 취하기 위해 몇 번의 통화와 이메일을 거쳤다. 그는 현재, 교단을 떠나 충남 아산으로 내려가 있다. 넉넉지 않은 원고일정 탓에,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다. 그가 보내온 이메일은 한 톨 빼고 더할 것 없이 충만했다.

장회익 선생의 이메일을 받고 언론대학원 수업시간에 들은 한 학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당시, 수업을 맡고 있던 언론인 심재철 교수는 중간 범위middle range 이론을 주창한‘로버트 머턴Robert Merton’으로부터 받은 한 통의 이메일을 소개했다. 로버트 머턴에게서 온 이메일은 그 분량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데다 꼭 필요한 내용이 알곡처럼 차 있어“역시 위대한 학자!”라는 경탄이 절로 나왔다고 했다. 장회익 선생의 메일이 바로 그랬다. 질문지는 학문-과학-독서-교육, 총 네 마당으로 구성했다.


하나, 공부― 학문

김 : 스스로를 공부꾼이라 칭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장 : 생각해보니, 그것밖에 더 적절한 표현이 없더군요. 남과 좀 다른 점이 있다면 공부를 즐겨서 한다는 점이고, 또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런 점에서 좀 유별나기에‘꾼’이라고 스스로 조금 격상시켜 불러본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꾼’자격이 있는지는 아마 책을 읽는 독자들이 판정해주지 않을까 합니다.


김 : 많은 사람들은 공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 직장인들은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까지 해야 하는 ‘샐러던트’의 운명을 개탄하는데요.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공부에 질리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을까요?

장 : 그건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 그리고 나를 가르쳤던 여러 스승님들이 그렇게 만들어주신 거라고 봅니다. 원해서 된 것이기보다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니 오직 고마워할 뿐이지요. 능력에 비해서 지나친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덜하게 만들고, 힘이 남아 스스로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나게 만들어준 것이 묘책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단 이렇게 공부를 즐기는 버릇이 들면 나이를 먹어도 이것이 지속된다는 점이 신기합니다. 지금도 물론 무리해서 즐거움을 잃지 않도록 나름대로 배려는 하고 있습니다.


김 : 현대인에게 공부는 승진과 성공으로 직결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공부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장 : 그건 불행한 일이지요. 공부는 즐겨야 되는 것이지 일삼아서는 안 되는 것이거든요. 그래도 작은 목표를 이룬다든가 작은 성취를 경험하는 것은 의욕을 북돋우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그렇기에 무리하지 않은 범위에서 친구들과 경쟁을 한다든지 성적 따기 내기를 하는 것은 재미를 북돋우지요. 하지만 여기에 이해관계를 걸고 죽기 살기로 대드는 것은 아주 해롭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이런 일을 버텨낼 수도 있지만 결국은 지쳐서 멀어지게 되고, 일단 멀어지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공부는 놀이의 일부로 생각하고 해야지 승진이나 성공 같은 이해관계와 너무 깊이 연관시켜 해서는 결국 공부 자체와 멀어지게 됩니다.


김 : 시간과 싸우는 현대인들에게 공부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신다면요.

장 : 삶과 공부를 분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하는 시간 공부하는 시간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일을 통해 배우고 배움을 통해 일을 더 잘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단지‘일’이라는 것을 너무 좁게 생각하지 말고 자기발전이 일의 한 부분이라고 보면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공부를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시키다 보면 낭비하는 시간이 적어집니다. 가령 출퇴근길이라든가 휴식 시간도 유용한 공부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물론 이 공부가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고 놀이나 재미로 느껴져야 하는 것이지요.

한 가지 예로,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하면 예술로 승화시킬까 하는 과제를 스스로 만들어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생각해보지요. 이것을 위해서 생각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써볼 게 아닙니까? 이게 좋은 공부거든요. 이 공부가 잘되면 상사에게 칭찬도 받을 것이고 승진도 잘 될 것이고 또 작업환경이 즐거워질 것입니다. 단지 이런 것을 부담을 가지지 않고 재미로 하자는 거예요.


김 : 책을 통해 공부하는 장소로 세 곳을 꼽으셨는데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장 : 저같이 직장의 부담이 없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다른 분들도 참고로 할 수는 있겠지요. 일단 책 읽고 글을 써야 하니까 책상머리에 앉아야지요. 이것은 필수이지만 지나치면 안 되는 거지요. 그리고 지치기 전에 몸을 일으켜 가벼운 산책이나 등산을 합니다. 걸어가면서 생각을 계속하자고 마음을 먹지만 밖에 나가는 순간 다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한참 걷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문득 생각이 다시 떠올라 머리를 굴리게 되고 때로는 기발한 착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잘 때도 마찬가지에요. 좀 피곤해지면 자리에 눕는데, 이때도 누워서 생각해보자 하는 핑계를 대고 잠자리에 누우면 왜 그렇게 빨리 잠이 오는지, 금방 잠이 들어버립니다. 그러다가 새벽에 어렴풋이 의식이 돌아오면서 자기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생각이 빙빙 돌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어떨 때는 생각이 깨끗이 정리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주 새로운 착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면 뛰어 일어나 잊어버리기 전에 메모를 해두어야지요. 결국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공부를 할 경우에는 때와 장소에 별로 구애될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김 : 진정한 의미의 공부란 어떤 걸까요?

장 :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공부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생각하며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공부라야 한다고 봅니다. 듣는 말이나 읽는 내용은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참고자료로 생각하면 됩니다. 단순한 기억은 최하위 공부에 해당합니다. 공부라는 것은 자기의식 속에 이해의 틀을 만들고 그 속에 앎의 내용을 정리해두는 작업이에요.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이틀 안에 자리를 잡게 되는데, 틀이 마땅치 않으면 결국 허공을 맴돌다가 사라져버립니다. 그러니까 이해의 틀을 잘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게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주체적인 자세로 이해를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좀더 정교한 새 틀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흔히 깨닫는다는 것이 바로 새로운 이해의 틀을 통해 사물을 새롭게 보게 된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김 : 선생님도 학문의 방황이랄까, 이런 걸 겪으셨겠죠.

장 : 대학 시절 물리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과정에서 이해의 틀이 마련되기도 전에 무리하게 학문의 내용을 흡수하려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책에 적힌 내용이나 강의에서 듣는 내용이 도무지 이해되었다는 느낌이 안 드는 거예요. 그래서 철학이 부족해 그런가 보다 하고 철학과 강의를 들어가며 철학공부까지 해보았는데, 당장에는 큰 도움을 못 얻었어요. 결국 내 스스로 이해의 틀을 새로 만들고 이것 위에 학습의 내용을 담아보니까 그제야 새로운 눈이 떠지는 느낌이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 나름대로 상당한 기간 동안 지적인 방황과 모색의 과정을 거쳤다고 해야 하겠지요.


김 : 자신의 학문인생에 영향을 미친 인물이 있다면요.

장 : 어릴 때는 아버님이 많은 영향을 주셨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담임선생님이 혼자 공부를 해보도록 권고를 해주셔서 큰 도움을 받았어요. 대학 때는 이미 말한 대로 방황을 했지만 마침 몇몇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 말동무가 되어 서로 위로도 하고 격려를 주고받았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친구는 좋은 교사 못지않은 도움을 주는 것이지요. 그리고 저 멀리는 늘 아인슈타인이라는 인물이 있어서 내 앞길을 인도했다고 할 수 있어요. 그가 학문을 해나간 과정이라든가 그가 이루어낸 업적이 모두 내게는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온 것이지요.


둘, 과학

김 : 언제부터 과학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장 : 중학교 때가 아닌가 합니다. 책에 자세히 설명을 했습니다만, 햇빛을 똑바로 받는 면과 비스듬히 받는 면의 밝기 차이를 코사인 함수를 통해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내 스스로 찾아내었고, 지구상의 일정한 높이에서 낙하하는 물체가 땅에 이를 때까지 시간을 계산하는 문제를 아버지가 내게 주었을 때, 내 스스로 풀어낸 것 같은 경험이 결국 내가 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가 아닌가 합니다.

수학적 방법으로 자연을 서술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인데, 이 단계에서 학습 체험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아울러 앞으로 우리나라는 이른바 과학기술을 통해서만 살 길을 마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여기에 내가 직접 나서보자는 생각도 일부 했던 것 아닌가 합니다.


김 :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를 보면서, 과학자로서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장 : 과학의 힘이 인간을 외계로 내보낼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는 점에서 뜻 깊은 일이지요. 그렇지만 이것은 과학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가능성의 일부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은 과학이 말해주는 인간의 위치를 우리 스스로 깨닫는 일이라고 봅니다. 지구 생태계에서 우리는 어떤 위치에 놓여있으며 어떤 역할을 하는 존재인가 하는 점에 대한 인식 말입니다. 이러한 인식이 우리에게는 너무도 부족하고, 이것으로 인해 우리는 지금 지구 생태계를 파멸로 이끌어가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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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과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데다, 관련 책들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세요?

장 : 일단 긍정적인 면이 많다고 봅니다. 그러나 언젠가 프랑스의 과학사상가였던 자크 모노가 그의 책 『우연과 필연』에서 지적했듯이, 현대인은 과학이 가져다준 과실에만 관심이 있을 뿐 과학이 전해주는 메시지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과학에 관한 대중 서적은 오히려 이러한 점을 부추기기도 하지요. 과학을 마치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가져다줄 수 있는 요술방망이 정도로 생각하게 만든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과학 그 자체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해야 하는데, 이것이 어렵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과학이 문화 속에 제대로 융합되어 우주와 우리들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이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자각하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먼저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일반 지성인들 또한 이러한 점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김 : 아인슈타인을 일컬어 자신을 세상 밖으로 꺼내준 존재라고 하셨는데요.

장 : 아인슈타인의 전기를 번역하고 아인슈타인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내가 이른바 상아탑 안에만 갇혀있지 않고 대학 밖의 사람들과도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표현해 보았지요. 그리고 또 이 말 속에는, 사회와 문명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발언을 해온 아인슈타인을 내가 조금 본받았다는 뜻도 담겨있습니다.


셋, 독서

김 :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책읽기가 선생님의 공부인생에 미친 영향은 어느 정도입니까?

장 : 물론 매우 큽니다. 나는 많은 책을 섭렵했지만 정작 그 가운데 정독을 한 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람이 성장해가는 각 시기에 자기에게 꼭 필요한 책을 만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나 또한 내게 적합한 책을 만난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느 책이 자기에게 꼭 적합한 것인지를 가려내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나는 이것을 ‘책의 냄새를 맡는다’고 말하는데, 그럭저럭 하다보니 냄새 맡는 데는 어느 정도 통달을 한 것 같습니다.


김 : 책에 얽힌 잊지 못할 추억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장 : 나는 대체로 책에 의존해 물리학을 공부했는데, 양자역학이라는 분야는 책을 아무리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양자역학에 관한 새 책이 나오기만 하면 되도록 구입하려고 애써왔습니다. 그래서 결국 양자역학 책만 수십 권이 되었는데, 어느 동료가 나를 보고 양자역학 책 수집광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말하자면 이해를 못할수록 책은 많이 쌓아두게 되지요.


김 : 잊지 못할 책이나 저자가 있을 것 같은데요.

장 : 내가 최초로 가졌던 책이 윤석중의 동요집‘초생달’이었는데, 아버지를 졸라 어렵게 가지게 된 것이었지만 처음에는 별 재미가 없었어요. 나는 만화를 더 좋아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가까워져서 나중에는 아주 친근해졌어요. 한데 이게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알지 못하게 사라져버렸어요, 그러다가 아주 늦게 영월에 있는 책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기사를 보았어요.

이 책의 표지 사진도 함께 실렸는데, 정말 옛 친구를 만난 듯해서 한번 영월로 찾아가 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아직 가보지는 못하고 있어요. 가게 되면 내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동요 몇 편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특별히 내놓고 좋아하는 저자는 따로 없습니다. 이상하게도 책에서 내가 얻을 것을 얻어버리면 책 자체는 내게서 멀어집니다. 단지 후일 기억을 되살리기거나 참고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보던 책을 잘 버리지는 못합니다만.


김 : 책읽기의 중요성, 어디에서 찾으십니까?

장 : 지적 활동을 영위하는 데서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안내자가 됩니다. 책만 옆에 있으면 항상 무엇이든지 배워나갈 수 있지요. 특히 학교 교육을 마치고나면 거의 전적으로 책을 통해 공부를 지속하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공부하는 삶을 위해서는 학교보다 책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 요즘 사람들은 참, 책을 안 읽는다고 합니다. 또 팔리는 책은 자기계발이나 성공 관련 도서뿐이구요.

장 : 안타까운 일입니다. 훌륭한 스승을 옆에 두고 배우려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일이지요. 그런데 그들만 탓할 일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학교교육을 통해 공부에 너무 지쳐버렸기 때문에 책을 열어보기도 싫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제도의 탓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아직 이런 교육 제도 안에 묶여있으니 딱한 노릇입니다.


넷, 교육

김 : 녹색대학 총장직을 역임하셨습니다. 재직 기간 중,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장 : 녹색대학 창립 과정에 잠깐 참여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특히 녹색대학 설립에 관여했던 것은 대략 두 가지 취지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는 현대문명이 잘못된 방향을 지향한다고 보고 이를 시정할 녹색문명을 지향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고, 둘째는 현행 대학교육이 지나치게 제도에 얽매여 교육 본연의 모습에서 벗어났다고 보고 이를 시정할 대안 교육을 모색하자는 점에서였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내가 이 두 목표를 이루어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이 들어, 처음 몇 개월 함께 하다가 학교 운영 작업에서는 곧 물러났습니다.


김 : 현 교육시스템에 대한 고견 부탁 드립니다.

장 : 한마디로 내용보다는 형식에 치우치는 교육이 되고 있다는 점이 근본 문제입니다. 학위라든가 학교의 명성에 지나치게 매달리다 보니 모든 교육이 명문대학 입학에 목을 매게 되고, 이것이 교육 자체를 완전히 왜곡시키고 있는 거지요. 이 문제를 풀지 않는 한 해결방법이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는 대학의 내용적 다양화와 함께 질적 평준화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대학은 다양해야 하지만 좋고 나쁜 대학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교육하고 학생은 자기 취향에 맞추어 선택만 하게 해야 합니다. 학생 사이에는 우열이 나타나더라도 대학 사이에는 우열이 나타나면 안 됩니다. 이 점만 사회가 보장한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김 : 30년간 강단에 서며 대학생들을 만나고 가르쳐오셨죠, 대학생들의 공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채워야 할 점이 있다면요.

장 : 점점 더 학문 그 자체, 앎 그 자체에 접근하려는 노력보다는 학점이라든가 사회적 보상에 관심을 두는 경향이 늘어납니다. 이것이 우선은 현명한 것 같지만 길게 보면 손해 보는 일이라는 것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어요. 우선 자기 능력을 기르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김 : 인터넷, 영상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대학생들의 글쓰기가 점점 ‘다운로드’나 ‘카피’ 혹은 ‘짜깁기’나 ‘검색’에 그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진중한 학문의 자세는 사라진지 오래라는 것이지요. 이런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장 : 정말 걱정스러운 추세입니다. 사실 인터넷은 학습에 좋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지만, 이런 가벼운 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 결국 자기를 죽이는 독이 되고 맙니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이런 경향이 있을수록 여기에 역행해 본연의 학문 자세를 가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항상 원칙에 맞추어 자기 향상 능력을 기르는 것만큼 강력한 전략은 없습니다.


김 : 다시 태어나도 공부도둑, 학자로 살고 싶으신가요?

장 :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이미 70년을 살았는데, 70년이 더 보장된다면 여전히 가던 길을 더 걸어가고 싶습니다.


김 : 아직도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면?

장 : 공부의 폭과 깊이를 키우려고 노력했지만 아직도 이 점에서 많이 부족합니다. 전체를 하나로 묶어 통합적인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 내 궁극의 목표입니다.


김 : 지금, 꿈꾸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까?

장 : 자연을 좀더 가깝게 접하며 건강하게 삶을 즐겨보려 합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성급하게 무엇을 이루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오직 너무 늦기 전에 내 안에 들어있는 쓸 만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모두 뱉어놓고 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생각처럼 잘 마무리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요.


“나는 이미 선언했듯이 공부꾼일 뿐이다. 그리고 공부꾼은 곧 학문도둑이다. 나는 전 우주의 학문 보물창고에 들어가서 학문의 정수精髓들만 다 골라 훔쳐내고 싶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보물창고에 어떻게 진입하느냐 하는 점이다. 여기에는 창고에 따라 각각 모양이 다른 수 많은 열쇠가 필요하다. 문제는 그 열쇠를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게 쉽다면야 누군들 들어가 보물을 가져가려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도둑질도 열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고수 도둑은 한두 개 문만 여는 열쇠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마스터키’를 마련한다. 하나 가지고 모든 문을 다 따고 싶은 것이다.” (『공부도둑』에서)

장문의 인터뷰에 응해주신 장회익 선생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김민영|<북데일리> 기자 bookworm@pimedia.co.kr


기사 게재 : <기획회의> 223호 만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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