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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내가 공짜책을 포기한 이유

숭학당 2008.08.2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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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기자가 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마음껏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일로 생계를 이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했다. 꿈을 이뤘을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고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때문에 고된 업무량이 주는 고통도 기꺼이 잊을 수 있었다.

 

 

수많은 책을 '보는'(책 장정의 외형, 즉 표지를 보는 행위를 말함) 즐거움은 책을 읽는 희열을 잊게 할 만큼 큰 것이었다.

 

나는 결국 그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그러하듯) 그간 나는 책 읽는 시간을 허락받지 못했다. 대신, 책읽는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에 만족해야 했다.




물론 그 기쁨은 노동의 고통이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망각하게 하는 기막힌 즐거움이어서 전국을 누비며 <독서광의 방>이라는 연재를 취재하기도 했다.

 

고백하건데,

 

출판기자로 일하면서 나는 책 사는 데 거의 돈을 들이지 않았다. 요청하지 않아도 회사로 책이 왔고 도착하지 않은 책은 요청해 받을 수 있었다. 기사를 써야 한다는 중압감은 있었지만 막 나온 신간을 누구보다 빨리 받아 보는 (역시, 책 장정의 외형 즉 표지를 보는 행위를 말함) 설렘을 무엇에 비길까. 정확한 표현인지는 몰라도 홍콩의 빅토리아피크를 오르던 설렘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런 <공짜책>들은 나의 독서시간을 좀먹고 말았다. 기사를 쓸 수 있는 기자 수는 정해져 있었고 책은 그에 비해 '너무' 많았다. 국내 일간지 북섹션 기자들이 겪고 있는 공통된 고민을 우리도 겪었다. 수없이 쏟아지는 신간을 처리하기에 기자수는 '너무' 적었다. 그러다 보니 뉴욕타임즈의 북섹션처럼 권위있는 서평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했다. 그건 기자 개인의 잘못이라기 보다 산업 전체의 구조적 문제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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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나의 식탐은 갈수록 늘어갔다. 허기증에 걸린 환자처럼 책만 보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가는 데도 나는 책을 펴지 못했다. 어쩌다 책을 읽어도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서평을 쓰지 못했다.


나는 그런 허기증 때문에 몇번쯤 울었고 그때마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문예춘추>를 그만둔 이유를 절감했다. 그의 퇴사 이유는 간단했다.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


나의 퇴사 이유 또한 100% 그러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상당부분 그러했다고 말할 수 있다. 결정적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만든 나머지 사유. 환경적 스트레스와 심리적 압박감이 나의 월급쟁이 생명을 단축시킨 것이 사실이나 모든 것이 결정된 후에는 오히려 담담해졌다.

 

차라리 <공짜책>의 부담에서 이렇게라도 벗어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나는 다시 반디의 소녀(이미 소녀가 되기엔 많은 나이지만 책을 탐하는 상태는 소녀의 시절 그대로다. 그래서 철이 들지 못했다.)가 됐다.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닌 스스로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됐다. 월급쟁이로 살지 않고 사장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삶의 길을 스스로 내는 반디소녀가 되겠다는 포부는 다시 책 사재기를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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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저지른 사재기는 <개밥바라기별>과 <밀란쿤데라의 커튼> 그리고!!!! 다이허우잉의 <시인의 죽음>. 아... 800페이지에 달하는 <시인의 죽음>을 끌어안고 나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앞뒤로 굴렸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더이상 원치 않는 책을 리뷰할 부담도, 읽고 싶은 책을 눈앞에 두고 군침만 흘리는 안달도 없는 이 지극한 행복이라니.

 


의자에 앉아 <시인의 죽음>을 폈다. 서너 장 읽었을 때 내 심장은 이미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사람아, 아 사람아>를 읽었을 때의 그 격정적인 감정이 떠올랐다. 문화혁명의 소용돌이를 거치며 공개 자아비판까지 겪어야 했던 다이허우잉. 그녀의 사랑, '검은시인'으로 불리던 연인 원제는 자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 때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담은 책이 바로 <시인의 죽음>이다. 이 800페이지의 여정을 겪는 동안 나는 수십 번의 좌절과 기쁨을 오갈 것이다.

 

구매한 책 3권이 도착한 날, 나는 다시 6권의 책을 주문했다. 이 책들에 대한 서평은 공정한 비평으로 꾸며질 것이다. <공짜책>의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출판기자 시절의 수동적인 글쓰기에서 벗어나 <진짜서평>으로 도약하는 능동적인 가을. 아....청명한 바람이여. 나를 미치게 하는 책들의 향연이여....!

  
                                                                                                   김민영(
hwayl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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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kwang.info BlogIcon 광서방 2008.08.24 23:00 신고 공감이 가네요. 출판 기자도 아니면서 저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더불어 글쓰기에도 관심이 있다보니, 이래저래 책을 구하게 되어서 서평을 쓰곤 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읽고 싶은 책만 서평을 쓰는 게 아니다보니, 그리고 그러다보니 서평을 써야'만' 할 책들이 많아지면서 비슷한 고민이 생기네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양을 줄인다'는 쪽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읽고 싶은 책들을 좀 더 읽고, 그래서 좀 더 제대로 된 서평을 써보려구요.
    와서 보니 배울 만한 것들이 많은 블로그네요. RSS 등록하고 갑니다~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blog.naver.com/hwayli BlogIcon 김민영 2008.08.25 00:07 신고 멋진 결심 하셨네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고민이 아닐까 합니다. 책에 대한 욕심을 억누르지 못하다 보면 처음 책을 좋아하던 지점의 순수한 마음을 잊게 되는 것 같아요. 책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릴 수도 있구요. 광서방님의 결심처럼 양보다는 내용에 집중하는 것이 꾸준한 독서를 돕는 좋은 습관인 것 같아요. 댓글 감사합니다. ^^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bookstory.kr BlogIcon 북스토리 2008.08.28 00:01 신고 오늘 행복한 상상의 운영자님과 전화통화를 하였습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격는 이중의 생활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신 듯 합니다.

    저희 북스토리도 마찬가지인 듯
    하고싶은 일과 수익을 내야하는 양날의 칼앞에서
    도리없이 둘다 이끌다 보니 더 집중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현명한 판단이라 생각이 듭니다.
    모든 사람의 꿈이 자신이 하고 싶은 그것을 꿈꾸지만 용기가 없어 결정을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김민영님은 진정 용기있는 분이라 생각이 드는군요.
    행복한 독서생활 되시기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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